김명희 시인의
시 창작 교실
시란 무엇인가?
5) 시의 정신
시의 정신이란, 시에 담은 글쓴이의 뜻을 말한다. 시에 담긴, 글쓴이가 인생을 바라보는 진실성이나 방향 또는 세계관이 그것이다. *시(詩)정신은 측은지심과 역지사지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대상들이 가엾고 불쌍하다. 작은 풀 하나도 바람 한줄기도 측은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인간이든 사물이든 식물이든 모두 그들 저마다의 삶을 이겨내고 견디는 과정에서의 외침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다 비극이라고. 이 방송을 만드는 최근에도 이웃들의 힘겨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누군가를 갑자기 잃고 사별하고 사회적 경기는 힘들고.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힘을 내고 용기를 내며 견딘다. 물론, 매일이 행복한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은 세상이니까,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내게는 무척 소중하고 다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나의 시 정신을 다른 방법으로 정리한다면 평면에 갇힌 1차적 물질을 입체적 언어로 바꾸고, 우리의 관습과 규범이 만든 일반적 의미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나의 시 정신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 문학의 선배이신 두 분의 시 정신을 잠시 한번 엿보고 갈까 한다. 바로 윤동주 시인과 김수영 시인인데 윤동주님의 별 헤는 밤을 먼저 보자.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의 시와
별 하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의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엄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화자의 관심적인 대상들을 시에 나타냄과 동시에 그의 신념의 무게가 엿보인다.
이 시에 나타난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과 같은 시어들은 모두 그의 '어머니'라는 시적인 이미지에 맞닿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시를 보면, 어쩌면 시 속에서의 어머니는 별과 유사한 내포적 의미를 갖고, 그런 상징이기도 하는데 화자는 어머니와 함께 별을 세면서 과거의 그리움이나 현재의 부끄러움까지도 모두 치유하고 먼 훗날 세상에 자랑할 미래가 올 것임을 믿고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어쩌면 온갖 현실의 시련에 맞서면서도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 모습이 시에서 보인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이상을 실현하길 기원하고 그런 미래를 기다리는 화자의 염원과 철학이 보이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시인의 시 정신이 엿보이기도 한다.
- 김수영 시인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중에서
시작(詩作),
즉 시를 짓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힘차고 거친 어조 속에 가득 찬 폭로와 자기반성,
사회와 현실에 대해 가하는 강한 비판을 통해 현실적인 참여와
사회에 대한 정의를 부르짖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기도 하다.
좀 더 덧붙이자면
현실과 현대문명을 비판했던 서정적 모더니스트로 보이기도 하고,
자유와 저항을 부르짖던 참여시 작가로 보이기도 한다.
격하고 모진 비바람 같았던 우리 역사와 함께 서서, 시대와 함께 변모하고
고뇌했던 시인 김수영의 시정신도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다.
앞으로 본인이 쓰고 싶은 시의 방향을 정리해 보는 것도 시의 정신을
가다듬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는 앞으로 어떤 시를 쓸 것인가’
또는 ‘나는 이 세상을 향해 어떤 시 정신으로 접근하고
이 시대를 시로 받아 적을 것인가?’ 를
오늘 우리 자신에게 진지하게 반문해보는 중요한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