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전의 미학
그런데 모르고 보면 야구만큼 따분하고 지루한 스포츠도 없다. 야구에는, 미친 듯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의 열정도, 속도와 현란함으로 눈이 부신 농구의 긴장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격투기에서 연출되는 흥분이나 ‘광기’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오로지 던지고, 치고, 달리면 그만이다. 그나마 타석에 섰다가 헛방망이질 한 뒤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타자들 평균 타율이 2할5푼이라면 네 번에 세 번은 허탕을 치는 셈이다. 참으로 공허한 확률이다.
그런데 야구의 본고장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진정으로 재미있는 경기는 ‘한 방’도 아니고 ‘무제한 다 득점’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1960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열린 TV토론회에서 어떤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야구 경기에서 스코어가 어떻게 되었을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케네디 후보는 즉각 “8대 7”이라고 대답하였다. 야구에서 10점 이상 대량 득점이 쏟아져 나오면 시시하고, 가물에 콩 나듯 한두 점 나는 투수전은 지루하기 그지없기 때문이었다. 그 뒤부터 야구에서 8대 7 점수 차 승부를 '케네디 스코어'라 부르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은 스포츠에도 상당히 조예가 있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미국 사회의 권력 경쟁이 운동경기보다 특별히 심오할 게 없는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케네디 스코어 게임’이 야구 경기의 백미(白眉)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더구나 그 경기가 종반 9회 말까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다면 단연 만점짜리다. 마지막 순간까지 관중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 ‘미묘’한 경기에서 오는 긴장감이야말로 ‘케네디 스코어’의 ‘묘미’이며, 야구의 ‘진미’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케네디 스코어’가 우리 흥미를 끄는 것은, 후반 9회 말까지 간발의 차이로 펼쳐지는 그 숨 막히는 대결 상황이 우리네 삶과 닮았다는 것이다. 대학입시든 취직시험이든 한 문제, 한 점 차이로 승부가 갈렸던, 그래서 두고두고 아쉬웠던 경험이 누구에겐들 없으랴.
이러한 삶의 이치는 축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축구경기에서 명승부는 주로 후반전에 펼쳐진다. 화려한 전술과 개인기로 한 치의 빈틈도 없는 팽팽한 긴장속에서 예측불허의 탐색전을 벌이다가, 후반전 들어 체력이 다할 무렵에 단 한 방, 총알 같은 결승골로 상대편 그물망을 흔들어놓았을 때, 이긴 팀 선수와 관객의 긴장은 한 순간 폭발하고 만다. 그것은 곧 우리네 삶이다.
후반전, 그리고 예측 불허의 한 점차 승부! 그것은 관객에게는 구경하는 즐거움을 주지만, 한편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정신적 긴장과, 생사를 넘나드는 체력의 한계를 강요한다. 그렇듯 ‘사회’라는 거대한 그라운드 안에서 무명 선수로 뛰어온 우리네 삶도 9회 말에 ‘케네디 스코어’로 끝막음되는 한판이다. 하지만, 그래서 후반전이 아름답다. 후반전에는 늘 처절한 절규와 빛나는 영광이 공존한다. 게으름과 거짓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아름답다. 게다가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여 패배의 절규와 승리의 함성을 바꾸어놓기라도 한다면 금상첨화다. 바로 그러한 ‘역전 가능성’이야말로후반전의 진정한 미학이다.
무덥고 나른한 ‘한여름 밤의 꿈’이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한 해의 후반전이다. 전반전을 리드 해온 선수도 후반 시작 지점에서 방심하다가, 느닷없이 상대의 역습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악인들의 조난사고가 대부분 하산 길에 일어난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또한 방심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이 시기는 상대의 방심을 틈타 결승점을 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스스로 채운 고삐를 바짝 당겨 쥘 때이다. 무한정 다 득점도 좋겠지만, 한 점 차의 짜릿한 명승부를 위하여 그리고 역전(逆轉)과 반전(反轉)의 후반전(後半戰)을 위하여 이 가을은 다시금 들메끈을 조여야 할 때다.
국민연금 웹진 9/10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