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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갑자기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靑巖 2007. 8. 20. 07:44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남편의 폭탄선언. 가슴은 그 심정 백배 이해하고도 남지만 머리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장 우리 식구 뭐 먹고 살지? 

지혜롭게 남편 맘 돌린 新 현모양처들의 똑똑한 대처법.

금슬 좋기로 유명하던 최향자(39세·가명)씨 부부는 최근 ‘이혼을 하네 마네’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뒤 계속 재취업에 실패해 9개월째 백수로 놀고 있는 남편 때문.처음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길게 백수로 지내게 될 줄은 몰랐다. 

맞벌이를 하면서 직장생활의 고충을 잘 아는 그녀로서는 남편이 조금 쉬고 싶어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별 말을 하지 않았다고. 다만 자존심 한 번 굽히면 될 일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굳이 사표를 쓴 남편의 행동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전업주부’처럼 살림도 잘하고 세심하게 챙겨주던 남편이 생각처럼 쉽게 취직이 안 되자 조금씩 짜증이 늘면서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아내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최씨의 경우 맞벌이 부부였기에 당장 경제적으로 힘든 점은 없었지만 만약 외벌이 남편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심리적인 갈등을 넘어 당장 먹고 살 문제가 목을 죄어오기 때문. 남편을 무조건 몰아세울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격려해주기도 어렵다. 자칫하면 부부간의 신뢰마저 깨질 수 있는 ‘힘든 숙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주부의 얘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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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회사 사람들의 친분 활용한 박주연(43세, 가명) 주부
“아내 백 마디보다 직장 동료의 한 마디가 더 효과적일 때도 있어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다혈질에 책임감 강하고 의리파인 우리 남편. 게다가 꼼꼼한 성격 때문에 회사생활은 늘 그에게 스트레스다. 남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대수롭지 않은 일들도 남편은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나서지 않아도 될 일도 꼭 나서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은 덕분에 회사에서 신망이 두터운 편. 

불평불만은 많아도 회사생활에 충실하고 열심인 남편은 애사심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남편도 가끔 ‘회사 때려치워야지’ 하는 소리를 하곤 한다. 이전 직장을 다닐 땐 하도 ‘때려치운다’는 말을 자주 해서 ‘그럼 때려치우라’고 한마디 했다가 정말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5개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젠 농담이라도 남편이 ‘회사 때려치운다’는 얘길 하면 절대 듣지도 못한 척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남편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건 며칠 전 남편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고서였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게 어떻게 부장님 책임이에요?’(건재상사 차)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부족한 저 때문에 부장님까지….’(홍상혁 대리) ‘조금 기다려봐. 위에서 무슨 얘기 나올 때까지. 기운 내고’(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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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궁금하긴 하지만 섣불리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남편의 성격상 휴대폰을 몰래 봤다는 사실에 더 화를 낼 게 뻔했다. 남편이 직접 얘기해주기를 기다렸지만 급한 내 성격이 가만두지 않았다. 내가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성격이 활달한 나는 평소 남편의 직장 사람들과 관계가 좋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편한 부서의 홍일점 여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아이 얘기로 시작했다가 조심스럽게 회사일로 화제를 돌렸다.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남편이 도무지 말을 안 해서 걱정스럽다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물론 전화를 한 사실은 비밀로 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직원의 말에 따르면 남편의 부하직원 중 한 명이 지금까지 수금 장부를 조작해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감사에서 적발돼 큰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조만간 징계 내용이 나올 것을 두고 회사 분위기가 말이 아니라고. 전화를 끊고 나니 오히려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남편이 직접 연관된 문제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다만 성실하고 인상 좋던 그 직원에 대한 실망이 컸다. 회사 자금을 빼돌린 건 엄청난 범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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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들어온 남편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것이 아닌가. 그간 있은 일을 얘기하면서 오늘 징계 발표가 났다고 말했다. 직원은 해고되고 남편에겐 3개월 감봉 조치가 내려졌는데 자신의 직속 부하가 회사에 누를 끼친 데 대한 도의적인 책임 때문에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당신이 회사 일에 책임감 강한 건 알겠는데,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책임감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적어도 나한테는 미리 얘기했어야 하잖아.”
화가 나서 무작정 밖으로 나온 나는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며칠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집에 없었다.

이튿날 오후 여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표는 수리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것. 다음날 오전엔 회사 이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이사님께 나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면서 제발 남편이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사님은 나를 위로하면서 자신을 믿고 모든 걸 맡겨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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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3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부서 직원 몇 명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물론 내가 연락해서 집으로 오게 한 것이다. 남편은 후배들의 인정 어린 호소와 따뜻한 마음씨에 크게 감동한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저녁은 이사님이 우리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다. 이사님은 아끼던 직원이 그만두니 마지막으로 밥 한번 해 먹이고 싶었다며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사님과 남편이 단둘이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회사를 그만둔 지 일주일 만에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그리고 전보다 더욱 열심히 회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나는 이사님과 사모님께 편지를 써 보냈다. 돈이나 선물을 보내는 것보다는 편지로 나의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이 갑자기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내 덕분에 자기도 점수를 땄다는 것이다.
“여보, 나 정말 장가 한번 잘 간 것 같아.” 남편의 웃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힘들던 일이 눈 녹듯 사라졌다.

 자료제공 우먼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