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법정스님

靑巖 2010. 3. 15. 08:24
법정 [, 1932.10.8~2010.03.11]
한국의 승려이자 수필 작가이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등이 있다. 

 

  

본명은 박재철이다. 1932년 10월8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1956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년을 수료한 뒤, 같은 해 통영 미래사()에서 당대의 고승인 효봉()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같은 해 7월 사미계()를 받은 뒤, 1959년 3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승려 자운()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어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하였고, 《불교신문》 편집국장·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살았다.

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6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다가,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강원도 산골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폐암이 발병하여 3~4년간 투병생활을 하였으며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8세(법랍 54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수필 창작에도 힘써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담담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정갈하고 맑은 글쓰기로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문명()이 높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텅빈 충만》 《스승을 찾아서》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 《숫(수)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법구경)》 《인연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역서를 출간하였다.
두산백과

 

 

무소유, 단순함과 간소함, 홀로 있음, 침묵, 진리에 이르는 길…. 모두가 한때일 뿐,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온 법정스님이 11일 입적(入寂)했다.

 

사소한 일상에서 우러나는 기쁨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지만 그 가치를 아는 자는 극히 드물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법정스님은 "밖이 아닌 안으로 넉넉해지라"고 가르친다.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쓰는 법을 몰라 느끼는 괴로움을 투명하게 밝혀 줄 법정스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온 사회가 우울하고 절망적인 뉴스로 들끓고 있을 때도 법정스님은 오히려 가진 것을 더 비워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어지러운 세상에 휘둘리는 것은 바로 마음에 중심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그는 또 불가의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가르침은 '허무'가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고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만남이니, 어떻게 살든 그 한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늘 깨어 있는 삶을 강조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법정스님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55년 출가해 수행하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가난의 행복함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조선일보

 

“내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 위해 써 달라”

 

입적 전날 ‘무소유’ 유언… 청빈과 수행의 삶
암자-산골 오두막서 지내며 세속과 거리 두고 수행-저술
1997년 도심도량 길상사 개원…金추기경과 종교 초월한 교유

 

《11일 입적한 법정(法頂) 스님은 베스트셀러가 된 에세이 ‘무소유’처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다 무소유로 돌아간 수행자였다.

“세상 떠들썩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또 사리를 줍는다고 재를 뒤적이는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 내가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내가 즐겨 눕던 작은 대나무 침상에 뉘어 그대로 화장해 달라. 나 죽은 다음에 시줏돈 걷어서 거창한 탑 같은 것 세우지 말고, 어떤 비본질적인 행위로도 죽은 뒤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법정 스님이 사석에서 평소 가까이 지내는 이에게 당부한 말이다.

청빈과 끊임없는 수행을 강조해 왔던 생시의 모습만큼이나 맑고 향기롭게 떠난 그의 앞에 세상은 깊이 고개 숙여 추모했다.》
법정 스님은 1954년 출가한 뒤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등 몇 차례 소임을 맡은 것을 빼면 명리와는 담을 쌓은 수행자의 본분을 지켜왔다. 1960년대 말 동국대 동국역경(譯經)원 편찬부장을 지내며 불경 번역에 참여한 뒤 1988년 ‘신역 화엄경’(이레) 등 수많은 경전을 번역해 펴낸 ‘역경가’로서의 스님 역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면모다.

그는 1975년 중 노릇을 제대로 하겠다며 전남 순천시 송광사 뒤편에 있는 작은 암자 불일암에서 수행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무소유’(1976년) ‘서 있는 사람들’(1978년) ‘물소리 바람소리’(1986년) 등 정갈하면서도 맑은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나왔다.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1992년에는 전기도 없는 강원 산골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겼다.

1960년대 봉은사 다래헌에서 생활할 무렵 스님은 중앙일간지로는 처음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동아일보와 인연을 맺었다. 1993년 4월부터 1998년 11월까지는 매달 한 차례 칼럼 ‘산에는 꽃이 피네’를 연재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스님은 강원도에서 손수 3시간여씩 차를 몰고 와서 동아일보에 원고를 건네기도 했다.

2003년 ‘수행자이면서 왜 신문 칼럼과 글을 쓰냐’는 질문에 스님은 해인사 수행 시절의 일화로 답했다. “장경각 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려오면서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내려오신 곳에 있다고 하자 할머니는 ‘아, 그 빨래판 같은 거요’라고 했습니다. …불교가 옛것만 답습하고 제도권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팔만대장경 말씀도 한낱 빨래판 같은 것에 불과합니다.”

스님은 1994년 시민운동 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설립한 뒤 1996년 요정이었던 서울 성북동 대원각을 시주 받아 이듬해 길상사를 개원했다. 스님이 일체의 직책을 멀리해 왔기에 ‘주지’라는 직함보다 ‘모임이나 법회를 이끄는 사람’이란 뜻의 회주(會主)라는 이름만 지녔다. 이후 길상사는 천주교, 개신교 등 타 종교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종교 화해와 나눔의 장이 됐다. 2009년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길상사를 찾는 등 각별한 교분을 나누기도 했다.

스님은 종교가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추상같이 목소리를 높였고, 자신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무거운 죽비를 내리쳤다. 화장지를 절반으로 잘라 쓰고, 선물을 쌌던 포장지에 글을 썼다. 길상사에도 자신의 거처를 두지 않았다. 법회에 참석한 뒤엔 바로 강원 산골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스님은 입적하기 몇 해 전부터 지병으로 건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시종일관 삶 역시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순간순간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시간을 무가치한 것, 헛된 것, 무의미한 것에 쓰는 것은 남아 있는 시간들에 대한 모독이다. 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위해 써야겠다고 순간순간 마음먹게 된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무소유 삶’ 법정 스님, 다 버리고 떠나다

 

무소유의 삶과 맑고 깨끗한 글로 사회에 큰 울림을 준 법정 스님이 11일 입적했다. 세수 78세(법랍 55세).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법정 스님이 이날 오후 1시51분 송광사 서울분원인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고 밝혔다.

법정 스님은 2007년부터 폐암으로 투병해오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며, 이날 낮 길상사로 요양처를 옮겼다. 산문집 <무소유> 등 20여권의 저서로 대중적 인기를 끈 법정 스님은 지난해 4월 길상사 정기법회에 참석한 이후 공식 석상에서 법문을 하지 못했다. 법정 스님은 10일 밤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겼다.

‘법정 스님 다비준비위원회’는 “일체의 장례식을 거행하지 말라”는 법정 스님의 평소 당부에 따라 별도의 장례행사 없이 13일 오전 11시 송광사에서 다비식만 거행하기로 했다. 분향소는 길상사와 송광사, 송광사 불일암에 마련됐다.
경향신문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 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법정스님 / 무소유 中

 

 


탁월한 수필가였던 법정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밥정 스님(속명 박재철.사진/연합)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목포
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목포상고를 거쳐 전남대 상대 3학년 때인 1954년 오대산을 향해 떠났다.
하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을 만나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
이튿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시작한 스님은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 통도사를 거쳐 1960년대 말 봉은사에서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17년간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았으며 불일암 시절 초반인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달아 내면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스님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잘 하지 않았지만 1996년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12월 길상사를 개원한 후에는 정기적으로 대중법문을 들려줬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이 있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식한 듯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했고, 지난해 6월과 11월에는 2003년부터 했던 법문을 묶은 첫 법문집 '일기일회'와 두 번째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냈다.
이달 들어서는 평소 법회 등에서 언급한 책 중 50권을 골라 소개한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상 문학의숲 펴냄)을 냈다.
스님은 다른 종교와도 벽을 허물었던 것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고,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했다.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는 환경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시민운동단체인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어왔다.
법정 스님은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산문집의 제목처럼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아시아투데이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는 것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믿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 물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내려놓지 못할때 마무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윤회와 반복의 여지를 남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진정한 내려놓음에서 완성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는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채
지금 이순간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용서와 이해와 자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일깨운다.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난다.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그리고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