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첫 삭발

靑巖 2019. 8. 6. 15:35

첫 삭발

 


원성

 

슬픔 가지곤 웬만한 설움 가지곤

좀체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내가

새벽 먼동에

파르라니 깎은 머릴 매만지며

나의 믿으이신 그분의 품에 이르러서는

그만 흥건히, 흥건히, 목놓아 울어 버렸다

 

찬 눈 몰아치던 간밤에

좌복을 함께 적시던 알알이 3천 주

 

하얀 눈서리가 정상 등골에 맺혔더랬어도

가슴 싸늘하게 쓸어 내리는 풍경 소리가

나를 놀라게 해도

한 마음 오직 한 생각

 

생가에 이르러 꽁꽁 언 살얼음 깨고

옥수를 긷는 붉은 손가락

 

오늘을 기다려 사뭇 시집살이 억척 마당쇠였던

행자 생활

끝내 운명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첫 삭발

머리처럼 송송한 세상의 인연이

부뚜막 장작과 함께 훨훨 타오르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