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노인과 달빛
靑巖
2019. 8. 8. 13:44
노인과 달빛
김건일
그 노인이 논을 갈고 있었다
마을에는 젊은이라고는 없고
젊다는 사람의 나이가
쉰이 넘었다
소는 쉴 틈 없이
입에 거품을 뿜으며
쟁기를 끌고
노인은 힘에 부쳤으나
소의 고삐를 놓을 수 없었다
어찌 이 땅을 버리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이 땅을
어찌 풀밭으로 만들랴
뼈가 뿌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땅을 갈고
이 땅에 씨를 뿌려야지
노인은 달빛을 받고 있었다
하이얀 달빛을
-김건일의 ‘노인과 달빛’ 전문
김건일 시인의 ‘노인과 달빛’은 최근 펴낸 시집 《밭 만들기》(시문학 刊)에 수록되었다. 그는 1973년 《시문학》 11월호에 조병화, 이원섭 시인의 추천으로 시단에 입문했다. ‘노인과 달빛’ 역시 슬픔이 배어 있다. 몸은 농사에 지쳤으나 마을엔 일할 청년이 없다. 젊다는 사람이 쉰 나이다. 땅을 놀릴 수 없어 노인은 다시 쟁기를 든다. 힘에 부쳤으나 소를 앞세워 땅을 간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고삐를 놓을 수 없다. 뼈가 ‘뿌러지는’(‘부러지는’이 맞는 표현이지만 강조하기 위해 시인은 된소리로 표현했다) 한이 있더라도 땅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