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巖 2019. 8. 19. 10:35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희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