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다시 봄에게

靑巖 2019. 8. 29. 16:29

다시 봄에게

 

김남조



올해의 봄이여

너의 무대에서

배역이 없는 나는 내려간다

더하여 올해의 봄이여

네게 다른 연인이 생긴 일도

나는 알아 버렸어

 

어설픈지고

순정 그 하나로 눈흘길 줄도 모르는

짝사랑의 습관이

옛 노예의 채찍자국처럼 남아

올해의 봄이여

너의 새순에 소금가루 뿌리려 오는

꽃샘눈 꽃샘추위를

중도에서 나는 만나

등에 업고 떠나고 지노니

 

 

봄에게

 


김남조

 

1

아무도 안 데려오고

무엇 하나 들고 오지 않은

봄아,

해마다 해마다

혼자서 빈 손으로만

다녀가는

봄아,

오십 년 살고 나서 바라보니

맨손 맨발에

포스스한 맨머리결

 

정녕 그뿐인데도

참 어여쁘게

잘도 생겼구나

봄아,

 

2

잠시 만나

수삼 년 마른 목을 축이고

잠시 찰나에

평생의 마른 목을 축이고

봄햇살 질펀한 데서

인사하고 나뉘니

인젠

저승길 목마름만 남았구나

 

봄이여

이승에선 제일로

꿈만 같은 햇빛 안에

나는 왔는가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