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문단

삽질을 하다

靑巖 2019. 10. 27. 21:25


삽질을 하다



김용언



꽃을 좋아하다 보니 삽질을 자주 한다

채송화 씨앗도 뿌리고

백일홍과 과꽃 씨앗도 뿌렸다


한 때는 바둑과 사진 찍기를 좋아했고, 술과 여자를 좋아했고

그러면서 구름처럼 무너져 갔다


채송화와 과꽃을 좋아하다 보니 채송화 같은 여자를 삽질하였고

과꽃 같은 여자를 챙기다 보니 두 눈 딱 고 과곷 닮은 아내를

얻게 되었다


올봄에도 구석구석 놀고 있는 땅의 잠을 깨웠다

예리한 삽날로 흙을 잘라서

곱게 펼친 후 꽃씨를 뿌렸다


채송화 같은 여자에게 삽날을 꽂던 몇 년 전의 살냄새가 나의

젊음을 부른다

흙의 뽀얀 속살이 번쩍번쩍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