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巖 2020. 1. 18. 19:57

첫눈

 

장세춘

 

 

겨울 문 틈새로

눈꽃이

한 올 한 올

뜬금없이 날리더니

도시벽화 속

묶여있던 담쟁이 넝쿨 잎들이

꽃송이가 너무 커 어색했던 나비들이

눈에 덮혔다

각양각색 도시색깔들

차바퀴에 졸음을 걸었던 회색 길바닥까지도

눈 그림속에 다 들어가

도시는 순박해지고

새삼 정겨워졌다

 

나도 잠시

눈에 묻히어

누어 볼까

 

나에게 첫눈은

늘 짧은 머리위에 먼저 왔다

탄물이 질퍽이던 사북 겨울 길

가난한 내 젊은 날에

처음

짧았던 내 머리위에 닿았던 차가운 입술

휘모는 높바람에 실려 스처 지나간 첫눈

 

삶은 그렇게

군데군데

물웅덩이를 남긴 채

꼬불꼬불 돌아

흐르는

좁은 냇가로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감아도

묻히지 않고

옅은 수증기 피어 내면서

눈 위에

뚜렷이 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