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정태규 시인

靑巖 2020. 3. 20. 18:15

‘한 자 한 자 건져 올려진 시’ 루게릭병 정태규 작가 시인 등단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는 정태규 소설가가 시인으로 데뷔했다. 정 소설가의 시 5편은 부산작가회의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작가와사회> 2019년 봄호(사진·통권 74호)에 실렸다. 게재된 시는 ‘백운사 가는 길’ ‘안개’ ‘병상에서 5’ ‘집으로 가는 길’ ‘별리’다.

정 소설가는 운동신경 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루게릭병으로 온몸이 마비된 채 벌써 몇 년째 누워만 있다. ‘안구 마우스’라는 컴퓨터 기계장치를 통해 눈 깜빡임으로 한 자 한 자 적어가고 있다. 그에게나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나 그 시간은 혹독한 견딤의 시간이었다.


최영철 시인 권유로 데뷔

시 5편 ‘작가와 사회’ 봄호 실려

“늦은 만큼 더 열심히 따라갈 것”





‘황량한 유배지를 건너온/낙타의 고독을 헤아려 주시어/오아시스 밤하늘에 뿌려진 별들의/교향곡을 듣게 하소서//주여!/주께서 허락하신 날까지/조금만 울게 하신 후/그 무한의 길을/당신과 함께 걷게 하소서//지금 저는/찬란한 가을에 있습니다’(‘병상에서 5’ 중).

정 소설가의 시인 등단에는 최영철 시인의 역할이 컸다. 정 소설가는 2016년 봄, 최 시인이 주최한 ‘맛있는 책 읽기’ 행사에 부인과 함께 참석했다. 그때 최 시인은 정 소설가에게 조심스럽게 ‘시를 한 번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안구 마우스를 움직여 힘들게 한 글자, 한 글자 의사 표현을 해야 하는 정 소설가가 그 연약한 노동력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시 쓰기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 소설가는 그날 이후 틈틈이 시를 썼고 지난해 말 최 시인에게 10여 편의 시를 보냈다. 최 시인은 그 가운데 5편의 시를 추려서 <작가와 사회> 편집위원에게 보냈다. 최 시인은 <작가와 사회> 2019년 봄호에 ‘오아시스 밤하늘에 뿌려진 별들의 교향곡을 듣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정 소설가의 신작 시에 대한 발문을 썼다. 정 소설가와의 귀한 추억담과 그에게 시를 쓰라고 권유한 계기가 나온다.

최 시인은 “찰나적 흥과 한을 받아 적는 양식인 시는 그에게 새로운 출구요 대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에 허용된 무한한 상상력과 비약이 그의 영혼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부디 좋은 시로 새로운 자유를 누리며 우리 곁에 오래 있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페이스북으로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 정 소설가는 “회갑을 넘긴 나이에 시인 등단이 부끄럽다. 늦은 만큼 더 열심히 여러 선배님들 뒤를 따라가겠다”고 ‘새내기 시인’으로서의 각오를 내비쳤다.

정태규 ‘소설가 겸 시인’은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했으며 부산작가회의 회장,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김상훈 기자 / 부산일보

201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