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종(鐘)을
靑巖
2020. 3. 27. 23:39
종(鐘)을
주희
지게 안으로 여무는 들판이 뒤에 남아 있는 길을
아버지와 아들이 올라가고 있다.
땀방울로 맞춰보는 해시계의 각도가
지게에 눈금처럼 새겨지는 길
고단한 등에는 왜 두세 시가 걸려 있는지
땅을 가늠해보는 작대기의 그늘이 길어질 무렵
타오르는 해 하나를 걷어 내고서야 내려온 지게는
눈이 멀어 더이상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작대기에
기댄 채 잠들었다.
그리고 추수 끝난 벌판처럼 까끌해진 손으로 먹는 저녁
부자는 그렇게 저무는 하루를 지게 안으로 내려놓는다.
왜 새벽종은 말이 없는지
길어지는 겨울 늦자락
홀수처럼 얼어가던 고드름이 왜
내 미간에 자리 잡고 빛나고 있었는지.
아빠, 그 미소하는 찰나 속
아직도 슬픔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여요.
수면 아래 연유처럼 흐르는 밤
흩어진 그림자는 언저리를 배회하고
왜 가장자리에는
밋밋한 얼굴이 불규칙하게 보였는지.
다시 시작하는 저녁
별의 움직임이 이슬에 운행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