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신발론

靑巖 2020. 4. 10. 01:03

2003 세계일보 신춘문예 출신 마경덕 시인 첫시집



시집 ‘신발論’

2005.11.30.



마경덕 시인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활발한 시작 활동을 펼쳐온 마경덕(51·사진) 시인이 첫 시집 ‘신발論’(문학의전당)을 상재했다. 대상을 따뜻하고 깊은 시선으로 감싸안는 모성애의 정조가 편편에 깔려 있다.

“연기가 자욱한 돼지곱창집/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내들/ 지글지글 석쇠의 곱창처럼 달아올라/ 술잔을 부딪친다/ 앞니 빠진 김가, 고기 한 점 우물거리고/ 고물상 최가 안주 없이 연신 술잔을 기울인다/ 이 술집 저 술집 떠돌다가/ 청계천 하류로 떠밀려 온 술고래들/ 어느 포경선이 던진 작살에 맞았을까/ (중략)/ 새벽이 오면 저 외로운 고래들/ 하나 둘, 불빛을 찾아 떠날 것이다/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섬에 닿을 수 있을지…/ 바다엔 안개가 자욱하다/ 스크류처럼 씽씽 곱창집 환풍기 돌아간다”(‘고래는 울지 않는다’)

술집에 둘러앉은 김빠진 사내들. 그들은 지금 비록 낡아버린 ‘술고래’ 신세이지만 그들도 한때 푸른 청춘의 바다를 항해하던 싱싱한 고래들이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바다를 떠올리며 누추한 고래들은 술을 마시다 새벽녘에서야 하나 둘 팍팍한 뭍으로 돌아간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연민과 위로의 그것이다.

“마당귀에 심은 토마토 한 그루/ 눈만 마주쳐도 덜컥 애가 선다/ 간짓대 같은 몸뚱이/ 쇠불알만한 새끼를 치렁치렁 달고/ 다시 입덧을 하는 토마토/ 누릇누릇 머리가 쇠고/ 허리가 휘었다/ 차마 놓을 수 없는 것들/ 버리지 못할 것들/ 안고 업고/ 작대기 하나로 버티는 토마토// 또 만삭이다/ 저 무지렁이 촌부(村婦)”(‘토마토’ 전문)

주렁주렁 열매를 매단 가느다란 토마토에서 시인은 코흘리개 아이들을 안고 업고 손잡고 길을 가는 무지렁이 촌 아낙의 안쓰러움을 느낀다. 그녀에게는 낡아서 버려야 하는 신발 하나도 이리 애틋하다.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신발論’ 부분)
세계일보 2005.12.16
조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