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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공주

靑巖 2024. 10. 22. 20:58

천도교

 

천도교(天道敎)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자 제1대 교주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1860년에 세운 민족 종교인 동학(東學)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1861~1922]가 개칭한 종교이다.

동학은 서학(西學)인 천주교에 상대되는 의미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천도교 관련 유적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는 천도교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

우선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 있는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있다.

우금치는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에서 동학농민군의 최대 격전지였다.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를 공격하여 중부 지역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우금치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밖에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는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의암성사, 춘암상사 등과 함께 49일 기도한 가섭암(迦葉菴)이라는 작은 절도 있다.

그리고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마곡사도 해월신사가 머물렀던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는 1969년 이창덕 교구장이 교당을 신축하고 천도교중앙총부의 인가를 받아 전국 최초의 천도교 공주교구가 창설되었다.

200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공주시의 천도교 교인은 125명으로 나타났다

(출처: 디지털공주문화대전-천도교)

 

천도교 공주교구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에 있는 천도교 소속 교구

 

개설

 

천도교 공주교구는 현재 공주 지역의 천도교 포덕(布德-전교 혹은 선교와 같은 용어임) 및 교인 교화를 담당하고 있으며, 천도교의 독특한 연원(淵源) 제도에 의해 광제포(廣濟包)에 소속되어 있다.

연원제도는 천도교의 정신교화를 담당한 조직으로 그 명칭이 ‘00포’로 되어 있으며 최고 지도자는 도정(道正)이라 한다. 속인제로 되어 있으며 현재 전국에 걸쳐 여러 개의 포가 있다. 이와 별도로 교구제도는 속지제로서 전국 각 지역에 분포외어 있다. 여러 연원에 속한 교인들이 한 개의 교구에 속할 수 있다. 광제포에는 대전교구를 중심으로 공주교구, 동작교구 등 몇 개의 교구가 소속되어 있다.

 

설립목적

 

설립목적은 크게 네 가지로 대별되는데 첫째는 한울님의 덕과 진리를 세계에 널리 알라는 포덕천하()이고, 둘째는 널리 창생을 구제하는 광제창생()이며, 셋째는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을 평안하게 하는 보국안민()이며,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하늘 나라를 건설한다()는 이념이다.

 

주요사업과 업무

 

천도교 공주교구의 주요 사업은 포덕 교화 사업과 우금치 동학혁명 전적지 성역화 사업이다.

천도교 공주교구의 업무는 주로 시일(일요일)에 집단교화 활동인 시일식을 봉행하고 있으며, 천도교의 4대 기념일(천일, 지일, 인일, 도일 기념일)과 3·1절 기념 등 각종 기념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활동사항

천도교 공주교구는 공주 금학동 우금치에 있는 동학혁명군위령탑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매년 11월에는 우금치동학혁명군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현재 신앙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내실을 기하고 있으며 대사회적 활동은 적은 편이다.

 

활동사항

 

2011년 11월 현재 천도교 공주 교구의 교인은 100여 명으로, 주로 공주시내 지역과 사곡면, 유구읍 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교인 수는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의의와 평가

 

천도교는 동학혁명을 비롯하여 갑진개화혁신운동, 3·1재현운동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주도한 역사가 있으며, 우리 민족이 세계에 내세울만한 종교다. 특히 천도교 공주교구는 우금치 동학혁명군위령탑이 상징하는 것처럼 민중의 종교인 동학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지역에서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해왔다. 앞으로도 남북통일 과정에서 천도교와 공주교구의 커다란 역할이 기대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天道敎公州敎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공주의 천도교 개관

 

천도교는 조선 후기 1860년에 수운 최제우 선생을 1세 교조(敎祖)로 하는 동학(東學)을,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을 거쳐 1905년에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天道敎)라고 이름을 고치고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개벽종교(開闢宗敎)이다

 

공주의 동학·천도교사를 대관(大觀)해보면 다음과 같다

 

1883년에 동학도인 윤상호와 윤상오 형제가 중심이 된 공주접(接) 발의로 경주판 동경대전을 간행하였다.

1884년에는 천도교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이 공주 가섭암에서 의암 손병희 선생과 춘암 박인호 선생(훗날 천도교 4세 대도주가 됨) 등과 함께 49일 기도를 봉행하면서 동학의 조직체계인 육임제(六任制)를 마련하였다.

 

1892년에 공주에서 동학도인 서인주와 서병갑 선생이 주동이 되어 최초로 교조신원운동(敎祖伸冤運動)을 전개하였고, 이것은 이후 서울 광화문 교조신원운동과 삼례와 보은 교조신원운동으로 이어졌으며 결국에는 동학농민혁명으로 연결되게 된다.

 

1894년 공주 우금티에서는 녹두 전봉준 장군과 의암 손병희 통령이 연합하여 전개한 동학농민혁명 최대의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이 때 임기준, 이유상, 장준환 등 수많은 공주지역의 동학도인들이 참여하여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1919년 유구에서 천도교인 황병주 선생이 주도하여 3.1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공주지역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다. 이후 공주지역에서는 들불처럼 독립만세운동이 번져가게 되었다.

천도교의 조직은 서울에 천도교중앙총부가 있고, 전국 각 지역에는 지방교구가 설립되어 있다. 그리고 서울에 천도교종학대학원과 각 지역에 천도교 수도원이 설치되어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천도교 공주교구는 1969년 창암 이창덕 초대 교구장이 교당을 신축하고 천도교중앙총부의 인가를 받아 전국 최초의 직장교구로 설립하였다.이후 한 차례의 이전을 한 후 현재의 위치(공주 봉황동)에서 일반교구로 종교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사진: 디지털공주문화대전

 

천도교 공주교구는 1973년에 공주 금학동 우금티에 있는 동학혁명군위령탑 건립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매년 11월 11일에는 우금티동학혁명군위령식을 봉행하고 있다.

 

천도교는 갑오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하여 갑진개화혁신운동, 기미3․1독립만세운동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주도한 역사가 있으며, 우리 민족이 세계에 내세울만한 개벽종교다.

 

 앞으로도 천도교가 남북통일 과정에서 북한의 천도교 청우당과 함께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기후위기와 문명전환의 시대에 개벽종교인 천도교가 인류를 구원할 대안종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리라 믿고 있다.(2021.12월 공주문화원 발간 '공주의 인물'이라는 책에 실림)

출처: 공주의 천도교 개관/작성자:현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