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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 '예절'이라는 다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 농사, 지나온 길의 되돌아봄 "자식 농사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부쩍 가슴을 파고든다. 쉬울 거라 여기며 시작했던 부모라는 역할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무거운 숙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지나온 인생을 다시 돌릴 수 없듯 자식 교육 역시 되돌릴 수 없기에, 다 키워놓은 지금 가만히 내뱉는 독백 속에는 부모로서 다 해주지 못한 회한과 부족함이 깊게 배어 있다. 디지털 세대의 소통 방식과 씁쓸한 서운함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란 요즘 세대의 소통 방식과 가치관을 머리로는 이해하려 애써본다. 하지만 평생을 바쳐 기울인 희생과 사랑을 생각할 때, 건성으로 듣는 대화나 무뚝뚝한 태도를 마주하면 부모로서의 서운함은 어쩔 수가 없다. 문자나 메신저 같은 비대면 소..

[나를 움직이는 한 줄의 문장] 타인의 시선을 거두고 나에게 쓰는 편지

언제부터였을까. 모니터 앞에 앉아 반짝이는 커서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작은 짓눌림이 피어오르곤 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주제와 결론이 유려하게 이어지고 있을까?'. 완성된 결과물을 향한 조바심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투명한 감옥 안에서, 글쓰기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외롭고도 버거운 노동이었다. 그렇게 쓰인 글들은 정작 나 자신을 움직이지 못했고, 막연한 두려움의 흔적만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글쓰기의 본질을 가만히 반추해 본다. 글이라는 것은 결국 세상 끝으로 보내는 거창한 전언이 아니라, 깊은 밤 나 자신에게 다가가 가만히 건네는 묵직한 편지다. 화려한 수식이나 타인의 인정을 걷어내고 종이 위에 나를 펼쳐놓는 순간,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

[칼럼] 커피 한 잔에 담긴 세대의 열기: ‘페이로드(Payload)’를 전달하는 신노년의 전문성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커피 열풍의 시대다. 카페는 단순한 기호음료 판매처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문화를 공유하는 삶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눈에 띄는 변화는 중장년 및 시니어층의 바리스타 도전이다. 그러나 시니어 바리스타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노년층을 위한 소득 보조형 일자리’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시니어 노동이 가진 잠재력을 크게 저평가한 시각이다. 시니어 바리스타는 단순한 생계형 노인 일자리를 넘어, 신노년의 전문성과 오랜 삶의 경험이 집약된 세대통합형 일자리이자 사회적 자립을 이끄는 동력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외식업 경영과 서비스 철학의 관점에서 바리스타의 역할은 단순히 원두를 분쇄하고 추출 버튼을 누르는 기술자에 머물지 않는다. 인문학적 통..

사거리 은행나무

사거리 은행나무- 이상준 신호등이 붉고 푸른 눈을 바쁘게 껌벅일 때천 년을 서 있는 나무는단 한 번도 걸음을 서두른 적 없다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내린 뿌리가차들의 요란한 소리를 자장가로 바꾸고 가을이 사거리 한복판에 멈춰 서면고목은 가만히 가지를 펼쳐바쁜 이들 머리 위로 황금빛 정류장을 차린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시간마저거친 주름 앞에서 속도를 줄이고,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도떨어지는 노란 잎새 따라 가벼워진다 [시작노트] 금천구 시흥동 은행나무 사거리는 문명의 빠른 속도와 자연의 오랜 시간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복잡한 사거리 한복판에서 차들과 사람들이 바쁘게 스쳐 지나갈 때, 오직 이 은행나무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도시의 가쁜 숨을 다독여 준다.

카테고리 없음 2026.09.24

계절이 서로를 품을 때

계절이 서로를 품을 때 이상준 물러서는 여름의 자락 위에다가오는 가을이 가만히 손을 얹는다어느 누구에겐 모자란 하루가또 누구에겐 아득한 시간이 되어빈자리로 소리 없이 흘러들고팽팽해진 햇살의 줄을 타고 내려온 서늘한 바람이지친 줄기마다 맑은 숨을 불어넣는다. [시작노트] 여름이 바짝 당겨놓은 생명의 현弦 위로 가을의 서늘한 손길이 와닿을 때, 계절은 서로를 밀쳐내지 않고 굳어가는 열매 속으로 가만히 스며든다. 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듯, 두 계절은 그렇게 하나의 결실 안에서 완벽히 하나가 된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아들과 대화 프로젝트] 관계 회복을 위한 3가지 대화 규칙

격앙된 감정이 지나간 자리, 고요 속에서 문득 아들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다. 서툰 사랑이라는 핑계로 내뱉은 거친 말들이 아들의 마음에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박혔음을 깨닫는 순간, 깊은 회한과 함께 '내가 과연 좋은 아버지인가' 하는 자책이 밀려온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다가섰다가도 마음대로 풀어지지 않으면 욱하는 감정이 먼저 앞서고, 결국 따져 묻는 태도로 이어져 아들의 방문을 더 굳게 닫히게 만들었던 날들. 이제는 거친 파도 같았던 말들을 거두고 깊은 호수 같은 침묵과 품어주는 마음을 먼저 배우고자 한다. 아들과의 무너진 소통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스스로 다짐하며 실천하는 '관계 회복을 위한 3가지 대화 규칙'을 기록해 본다. 첫째, 반응하기 전에 3초의 시차 벌이기 아..

[칼럼] 닫힌 방문 너머의 아이들, 비난보다 필요한 이해의 시선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걸까."성장한 자녀의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공부하느라 바쁜가 싶었지만, 자랄수록 대화는 단절되고 돌아오는 대답은 무뚝뚝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만 들어가는 아이, 기본적인 예의범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이는 모습을 볼 때면 섭섭함과 함께 깊은 자책감이 밀려온다. '우리 부모님은 그 어려운 시절에도 우리를 이렇게 키워내셨는데, 내 욕심이 과했던 걸까' 하는 회한이다. 그러나 이 세대 갈등의 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모와 자녀가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결핍과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온 시대를 경험했다. 땀 흘려 얻는 결실과 부모의 희생을 자연스레 체득했기에, 자녀만큼은 물질..

[칼럼]'먹방'과 '쿡방' 너머, 잃어버린 식탁의 정체성을 찾아서

바야흐로 '보는 먹거리'의 전성시대다. 맛집을 탐방하던 초기 먹방을 넘어, 연예인과 셰프가 냉장고 속 재료로 요리를 펼치는 '쿡방'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타인의 식사를 시각적으로 소비하던 단계에서, 직접 요리하는 재미와 미식의 경험을 따라 하는 참여형 문화로 진화한 것이다.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존의 영역을 넘어 일상의 가장 강력한 흥미이자 엔터테인먼트로 고착화된 순간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완성한 이 화려한 식탁 뒤에는 짚어봐야 할 짙은 그림자가 존재한다. 자극적인 양념과 엄청난 양을 내세운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는 '폭식'과 '과소비'를 하나의 유행이자 유희로 미화했다. 절제와 감사의 덕목이 담겨 있던 전통적인 식문화의 가치는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감각적 쾌락과 섭식 장애라는 건강상의 위험 요소들이 ..

머무는 시선 2026.09.21

[한가위의 뜰]가을 빛으로 물드는 정겨운 마음

한가위의 뜰 이상준 하늘이 닿을 듯 푸르름도어느새 낮아지고 깊게 익어 간 숨죽여 자란 시간이 어느새 가득 차서 가을빛으로 발갛게 물들어 모여든 곳 둥그렇게 차오른 달빛 아래 그리운 이들 상을 넓혀 둘러앉으면 비워둔 마음마다 오색 풍성함이 익은 과실처럼 가득 고인다. [시작노트] 높아만 가던 가을 하늘이 낮아지고 세상이 발갛게 물드는 결실의 계절은봄과 여름 내내 숨죽여 견디며 키워온 우리들의 시간이자 정성이다.그리운 이들이 모여 상을 넓혀 둘러앉는 따뜻한 정경은 둥그렇게 차오르는 달빛 아래, 그동안 비워두었던 서로의 마음마다 '오색의 풍성함'이 익은 과실처럼 가득 고여드는 결실과 축복의 순간이다.

[벽을 뒤흔드는 마지막 열쇠]은퇴라는 이름의 벽 앞에서, 내 삶의 '키워드'를 다시 쓰다

벽을 뒤흔드는 마지막 열쇠 / 이상준 아직 손끝에는 온기가 남아 있고 다리에는 길을 차고 나갈 힘이 뚜렷한데, 세상은 은퇴라는 이름의 정적을 내 앞에 던져놓았다. "이대로 멈춰 설 것인가?"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무력감 앞에 나직하게 나 자신을 향해 묻는다. 내가 지나온 것은 하나의 문이었을 뿐, 인생이라는 여정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내 미래를 설명할 단 하나의 키워드를 찾는다면 그것은 안주가 아닌 재생이며, 진정한 완성이다. 남이 만들어준 궤도를 벗어나 마침내 내 의지로 그리는 삶의 최후 지점. 그리고 지금, 내 눈앞을 막아선 나이라는 벽, 상실이라는 두터운 벽과 마주한다. 이 벽은 나를 가두기 위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간절히 다음 무대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 증명하라고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