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미국
버락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47)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낮 12시(한국 시각 21일 오전 2시)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는 이날 17분 간의 취임사를 통해 미국이 당면한 국내외 도전을 열거하며 "정부의 책임성과 미국인의 봉사 정신에서 새 시대를 열자"고 호소했다. 그는 또 외교정책을 결정하면서 미국의 안보와 미국의 가치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false choice)"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이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취임하며 우리 앞에 실제적인 도전이 있다"며 "그 도전은 짧은 시간 내에 쉽게 극복되지는 않겠지만 결국 극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악화된 미국 경제는 일부의 탐욕과 무책임의 결과"라고 말했다.
미국의 흑인 대통령 취임은 1619년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버지니아의 담배밭 노예로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지 390년, 에이브러햄 링컨(Lincoln) 대통령이 노예제를 폐지(1865년)한 지 134년 만이다.
▲ 20일 오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부부가 취임식장으로 떠나기 직전 퇴임할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와 백악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바마, 부시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 대통령, 오바마 부인 미셸. /로이터 뉴시스
이날 대통령 취임식은 상·하원 의원들과 대법관, 외교 사절 등 귀빈 1600명과 일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전 11시30분부터 미 의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됐다. 오바마는 이날 낮 존 로버츠(Roberts) 대법원장 앞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제16대 대통령이 사용했던 성경에 손을 얹고 "나는 미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최선을 다해 미국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고 선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취임 선서에서 자신의 가운데 이름인 '후세인(Hussein)'을 못 박았다. 풀 네임(full name)을 쓰는 것이 미 대통령 취임식의 전통이지만 동시에 미국과 해외의 무슬림들에게 포용(包容)과 화합의 메시지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워싱턴 DC 일원에는 전국에서 몰린 축하 시민 200여만명이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취임식 경호를 위해 비밀경호국(USSS) 지휘 아래 58개 연방·주·지역 기관 인원 2만여명이 투입됐다.
오바마 취임사 "도전 과제는 실제상황…새로운 시대 책임감 필요"
▲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20일(현지시간) 마침내 제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오바마 신임 대통령은 선서이후 행한 취임사에서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공포를 버리고 희망을 취하자"며 국민들에게 어려움을 이기고 일어설 것을 주문했다. / 블룸버그
버락 오바마 미 신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제들은 실제상황”며 “그것은 짧은 시간에 극복될 수 없지만 미국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정오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44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한 직후 행한 취임연설에서 “우리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미국은 지금 저 멀리 증오와 폭력의 조직과 전쟁 중이며, 우리의 경제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갈등과 반목보다는 목적을 위한 단결을 선택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며 “우리는 사사로운 불만과 허황한 약속, 그리고 우리 정치사에서 오랫동안 계속됐던 반목과 낡아빠진 도그마들의 종식을 선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강조했다.
오마바 대통령은 “우리 앞에 놓인 도전들은 새로운 게 많은 만큼 이에 대처하는 방식도 새로워져야 한다”며 “도전에 이기는 데 필요한 가치는 비록 오래되기는 했지만, 근면과 정직, 페어플레이 정신, 관용, 호기심, 충성과 애국심”이라고 말했다.
오마바 대통령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 미국과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의 의무를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새로운 시대의 책임감”이라며 “우리는 이러한 의무를 마지못해 이행하지 말고 기꺼이, 단호하게 수용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위기는, 감시의 눈이 없다면 시장이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혼란으로 빠져들고, 시장이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할 때 한 국가가 더 이상 번영할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진단한 뒤 “우리 경제의 성공은 항상 국내총생산(GDP)의 규모에만 의존해 온 것이 아니며, 자선에 의하지 않고 개개인이 부와 번영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의욕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확대시키는 우리의 역량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 오바마 대통령이 영부인 미셸이 들고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성경에 손을 얹은 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안내에 따라 대통령 선서하고 있다. 이로써 오바마 대통령은 정식으로 미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블룸버그
오바마 대통령은 “앞선 세대는 탱크와 미사일로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제압했던 것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와 동맹, 꺾이지 않는 확신으로 제압했다”며 “그들은 우리의 힘만으로 우리를 보호할 수 없으며, 힘의 신중한 사용을 통해 우리의 힘이 커진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러한 유산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며 “이러한 원칙들에 따라 나간다면 우리는 다른 국가 보다 큰 협력과 상호이해 및 노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위협에 대처해 나갈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를 책임있게 이라크 국민에게 넘겨주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렵게 달성한 평화를 지켜나갈 것”이라며 “오랜 우방은 물론 과거의 적국들과도 함께 핵위협을 감소시키고, 더워지는 지구를 정상화시키도록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테러를 하는 세력들에 대해 우리가 매우 강력한 대응의지를 갖추고 있으며, 그들을 패퇴시키고 말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 스탠드가 2009년 1월 19일 워싱턴 DC의 미국회 의사당 앞에 세워져 있는 모습.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