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오는 날 겨울비 오는 날 탁귀진 오늘 같은 날은 붕어빵 굽는 작은 포차를 찾아가 볼 일이다 노릇하게 익은 막 구워낸 붕어빵 그 냄새에 취해 볼 일이다 하굣길 시장 거리 한 모퉁이 동욱이 엄마가 구워 5개 100원 하던 물만 조금 더 부으면 몇 개쯤은 뚝딱 더 만들어내던 뜨겁고 구수한 붕어빵을 먹으면서 추적추적 겨울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비가 그치면 20리 길을 걸어서 갈 걱정에 땅거미 지는 시장길을 곁눈질하며 주머니 속 동전의 숫자를 하나 줄 손가락 가늠으로 헤아리는 사이 비 긋기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내 유년의 꿈이 싹트던 가난한 그 시절로 되돌아가 볼 일이다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시사문단 2020.07.08
사랑이란 사랑이란 조규수 붓을 잡으면 너를 그리고 싶고 연필을 쥐면 너에게 쓰고 싶고 악기를 보면 사랑을 연주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이 달콤하게 익어가고 마음과 마음 그리움과 기다림 그 틈바구니에서 끙끙거리며 겨우 삐져나오는 것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시사문단 2020.07.08
불쌍한 추억 불쌍한 추억 권형원 추억은 불쌍하다 아름답지만 기억하지만 자랑할 수 없고 얘기할 수 없다 사랑이라서 소리 내어 노래할 수 없다 둘이서 담은 추억 둘이서 아는 추억 밤에만 몰래 뜨는 젊은 시절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가슴에 찍어주고 눈가에만 몰래 뜨는 일곱 빛깔 지난 추억 아룸다움 말로 못 해 미안하고 불쌍하다.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시사문단 2020.07.08
홍시紅柹 홍시紅柹 안병학 가을 끝 바람에 옷을 벗고 살점마저 다 날린 뼈만 자란 감나무 앙상한 가지 끝 마지막으로 걸린 저문 태양 붉은 점 하나 바람은 저린 뼈마디를 헤집어 가물거리고 흐느끼는 눈망울 산까치 살점 뜯어 유혈하는 태양 삶을 다하고 마지막 남은 흑점 견고한 씨알 흑진주 한알 가녀린 가지 끝 저만치 혼자 떠 있는 생명의 꿈, 홍시 하나..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시사문단 2020.07.08
해 지는 들녘 해 지는 들녘 허혜자 해 지는 들녘 끝자락 저녁 연기 피어오르고 초가집 서너 채 정겨워라 먼 산에 구름같은 밤꽃이 지는 햇살에 아름다워라 논 갈던 누렁이 고개들어 지는 해를 바라보네.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시사문단 2020.07.08
겨울 겨울 신다해주 모닥불 피우는 계절 삼삼오오 둘러 앉아 종알종알 수다 떠는 계절 싸리문에 흰 눈은 소복이 쌓이는데 초가집 구들장은 뻘건 불을 품는다 일년 내 농부의 허리를 구부리게한 한마지기 땅도 희건 옷을 입고 춥다 하는데 겨울 한해 농사 잘되길 바라는 농부 아내 상동 댁의 질끈 동여맨 앞치마엔 긴긴 겨울밤의 옛이야기가 흐른다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시사문단 2020.07.08
냉장고 안에 들어가고 싶다 냉장고 안에 들어가고 싶다 이인영 세상의 걱정 근심 다 묻고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냉장고 안에 들어가고 싶다 왜 그리 불타오르는지... 화 화에 흰 눈을 뿌려본다 나무 위에 흰옷을 입힌 눈 아이처럼 달려가 먹어버리고픈 눈 그 하이얀 세상 냉장고 안에 들어가고 싶다 눈 위로 난 길은 사람이 만든 길 길 없는 길도 사람이 만든 길 그 길에 내 길을 만들고 싶다 내가 만든 길 위로 하얀 눈이 내려앉아 내 길을 지워버리겠지 그래도 계속 내 발자국을 눈길 위에 뿌리고 싶다 온 세상이 하이얀 눈으로 뒤덮여 화가 사그라들고 모두 냉장고 안에 들어가 눈꽃 세상에서 웃으며 살고 싶다 냉장고 안에 들어가고 싶다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시사문단 2020.07.08
벚꽃이 지는 밤 벚꽃이 지는 밤 이하재 시리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고 저 여린 가지마다 주렁주렁 꼬마전등을 달아 놓았구나 삼 촉 불빛들이 너울너울 춤추면 손잡고 걷는 사람들은 즐거워 환한 웃음꽃을 피운다 내마음 토닥여 달래줄사람 작은 별이 외롭게 깜박이는 서쪽 하늘 어디쯤 거닐고 있을까 고개를 젖히고 배시시 흘려보낸 나의 웃음은 허공 속을 첨벙거리다 하얀 나비 등을 타고 날아다닌다 살내음 짙게 배어있는 꽃잎이 뜨거운 두 볼을 스치며 물풍선 하나 떨궈놓고 간다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시사문단 2020.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