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들

아름다운 배우 오드리 헵번 (Audrey Kathleen Ruston)

靑巖 2010. 2. 25. 09:50

 

 

카쉬의1956년작‘오드리햅번’.눈을 지긋이 감은오드리햅번의 섬세한

얼굴선을 카메라렌즈로 잡아내 스타들의 상처 받기 쉬운 연약함을 표현했다。 

사람의 탈을(?)쓰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 오드리 햅번...카쉬의 초상사진중 유명작품이다.

인간이 얼만큼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물어보게한다. 

사진을 찍은 카쉬의 일화에 따르면 위의 사진은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사진이라고 한다...

완전 얼굴이 조각이지 않는가....사진을 찍은 카쉬가 극찬을 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오드리 햅번의 허리는 과연 몇인치인지.... 

 

 사진<김승우>님 블로그에서

 
아름다운 오드리햅번 / 시인 공광규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햅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다고
문화일보 1996년 10월 21일자 32면에
‘고객과 함께 하는 세계로 미래로-삼성’이
전면 이미지 광고를 냈다

흰머리 쭈그렁탱이 할머니가
아프리카나 어느 나라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인간 막대기를 안고
세상을 슬프게 응시하고 있다.

영풍문고판 48쪽에 실린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탱탱한 몸매로 번 재산을
기아의 아가리에 털어 놓고서야 천사가 되다니
피부가 헌 가죽부대처럼 쭈글쭈글 해져서야 아름다워지다니

평생을 거쳐 아무도 아무것도
제대로 사랑해보지 않은 나는
언제 나에게서 해탈하여
이 할머니처럼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한 불우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두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 물로 배를 채운 적이 많았다. 아사 직전, 이웃에게 발견돼 겨우 목숨을 건진 적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어머니와 딸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그때 한 구호단체가 그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했다. 그 단체는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UNICEF)으로서 지구촌의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빵을 나눠주었다. 소녀는 구호빵을 먹으며 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장성해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됐다. 이 소녀의 이름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그녀는 이 단체의 홍보대사가 돼 전 세계를 다니며 굶주린 어린이들을 도왔다. 그녀는 말한다.“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준 분들을 위해 이제 내가 봉사할 차례다”
 결혼과 함께 은막계를 떠나 1987년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땐 그녀의 모습은 모든 이들이 기억하고 있던 세기의 요정 오드리 햅번의 모습이 아니었다. 1993년(63세에)직장암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아프리카 오지의 어린 아이를 자신의 품에  안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그 여린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던 그녀의 모습은 이 세상 그 어느 여인보다 아름답고  인자한 모습이었다

출처: 마경덕님의 블로그 

 

오드리햅번 사생활 사진 공개

新闻中心-中国网 news.china.com.cn 时间: 2010-02-22  文章来源: 新华网

 

1954년 영화 ‘사브리나(Sabrina)’를 촬영하던 시절 오드리 햅번의 개인 사진사였던 마크 쇼(Mark Shaw)는 ‘라이프(LIFE)’지를 통해 당시 브라운관 밖 오드리 햅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 중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2008년 마크 쇼의 첫 번째 부인이 우연히 종이 상자 안에서 이 사진들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사진작가 마크 쇼는 1952년부터 ‘라이프’지의 사진 작가로 활동했다. 16년 동안 그는 약 100개의 테마를 사진으로 담아냈다.

 

 

 

 

 

 

[사진] 1953년, 영화 ‘사브리나’ 촬영 시절의 오드리 햅번.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사진] 마크 쇼(Mark Shaw)가 촬영한 이 사진들은 모두 ‘Charmed by Audrey:Life on the set of Sabrina’에 수록되어 있다.

 

 

 [사진] 1953년 영화 ‘사브리나’ 촬영 시절의 오드리 햅번

 

 [사진] 1954년 영화 ‘사브리나’ 촬영 시절의 오드리 햅번

 

 저작권자: 중국망신문중심(china.org.cn)-(주)내일신문

 

 

오드리 햅번

1929년 5월 4일~ 1993년 1월 20

 

아들에게 남긴 유언

 

매력적인 입술이 되기위해서는, 친절하고 따뜻한 말들을 할줄 알아야합니다.
사랑스런 눈빛이 되기위해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운데서 좋은 것을 찾을수 있어야합니다.
가냘프고 야윈 얼굴이 되려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식을 나누어줘서였다고 말할수 있어야한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되기위해서는 아이들에게 그머리가락을 그들의 손으로 만질수 있도록 하라.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결코 혼자 걸어갈 수 없는 그런 지식을 가지고 걸어갈줄도 
 

알아야한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반환할 줄도 알아야하며,새롭게 개선할줄도 알아야하며, 
 

개화할줄도 알아야하며, 드리고 도움을 행할줄도 알아야한다. 도움을 행할줄...
결코 누군가에게 한 적이 없는.
기억하라, 만약 당신이 도움을 필요로하는 손을 필요로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행하는 도움의 팔끝에서 당신의 도움을 찾을 것이다.
당신이 좀더 컸을 때, 당신은 당신이 두손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된다
하나는 당신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손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손이라는 것을 ....

 

 

 

 담배 피우는 오드리햅번 우표

 

배우 '오드리 햅번'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모습의 희귀 우표가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한 경매장에서 6만7000유로(9만3800달러)에 낙찰된 가운데,  이 우표 가격이 얼마까지 치솟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시 경매에서 오드리 헵번의 사진이 실린 우표 한 장의 순수 낙찰가는 5만3500유로였으나 커미션과 세금이 붙으면서 1억 원을 호가 했다. 우리돈으로 1억2000만원이다. 

미의 대명사로 통하는 오드리햅번이 익살스럽게 담배를 물고 있는 이 우표는 현재 세계적으로도 5장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희소가치를 감안하면 몇년 후 이 우표의 가격은 지금의 2~3배, 아니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모든 우표가격이 고가로 낙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우정청에서 발행한 오드리헵번 우표 가격은 그저 그렇다.  누구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표 수집가들은 이런 우표에는 관심이 없다.

앞서 독일 정부는 지난 2001년 오드리햅번과 찰리 채플린, 마릴린 먼로 등 유명인사들의 얼굴이 담긴 우표 1400만 장을 발행한 바 있다.  하지만 아들 숀 페러가 담배 때문에 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흡연 모습이 좋지않다며 우표 사용 중단을 요구,  독일 정부는 소각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에따라 오리드햅번의 우표는 대부분 소각되고 단지 몇장만 남아 희소가치를 자랑하게 됐다. 생전에 골초로 알려진 오드리 햅번은 지난 1993년 결장암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갔지만, 그녀의 가치는 죽어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2009년 07월 21일<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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