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1961~ )
저물녘 나는 낙동강에 나가
보았다, 흰 옷자락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정든 하늘과 물소리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강은
눈앞에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내 이마 위로도 소리 없이 흐르는 것을 알았다
어릴 적의 신열(身熱)처럼 뜨겁게,
( …… )
아아 나는 아버지가 모랫벌에 찍어놓은
발자국이었다, 홀로 서서 생각했을 때
내 눈물 웅얼웅얼 모두 모여 흐르는
낙동강
그 맑은 마지막 물빛으로 남아 타오르고 싶었다.
시인 안도현의 고향은 경북 예천 소망실이다. 낙동강으로 흘러들 내성천이 마을 앞을 지나가는 읍에서 멀지 않는 동네다. 시인은 여기서 태어나 스물한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4형제의 장남으로 가장이 된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찍부터 인척의 집에 얹혀 살며 공부했고, 대학도 문예장학생 혜택을 받고자 예천과 반대방향인 전북 익산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한다.
‘낙동강’은 시인의 이러한 가정환경과 고민이 강물에 뜨겁게 반영된 시다. 시인은 어느 날 낙동강에 나가 걸으며 흰 두루마기 입고 강둑을 걷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물소리와 푸른 하늘도 할아버지를 따라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의식 속으로 강물이 뜨겁게 흐른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결국 강물 따라 흘러가버리고 나는 모래밭에 남긴 아버지의 발자국과 다름없구나 생각하는 순간, 내 눈물의 모든 것으로 흐르는 낙동강. 그 푸른 물빛처럼 타오르고 싶었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이 20살 때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임을 고려하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의 소유자인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낙동강을 따라 홀로 걷고 있는 안도현 시인이 보이는 듯하다.
김영남 시인
출처: 세계일보(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