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낙타는 뛰지 않는다

靑巖 2020. 4. 20. 03:04

낙타는 뛰지 않는다


권순진


 

날마다 먹고 먹히는

강한 자가 지배하지도

약한 자가 지배당하지도 않는

초원을 떠나 사막으로 갔다


잡아먹을 것 없으니

잡아먹힐 두려움이 없다

먹이를 쫓을 일도

부리나케 몸을 숨길 일도 없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공연히 몸에 열을 올려

명을 재촉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물려받은 달음박질 기술로

한 번쯤 모래바람을 가를 수도 있지만


그저 참아내고 모른 척한다

모래 위의 삶은 그저 긴 여행일 뿐

움푹 팬 발자국에

빗물이라도 고여 들면 고맙고


가시 돋친 꽃일망정 예쁘게 피어주면

큰 눈 한번 끔뻑함으로 그뿐

낙타는 사막을 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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