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윤제림
강을 건너느라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말없이 앉아 있던 아줌마 하나가
동행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눈온다
옆자리의 노인이
반쯤 감은 눈으로 앉아 있던 손자를 흔들며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으로
차창 밖을 가리킨다
눈온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젊은 남녀가 얼굴을 마주본다
눈온다
만화책을 읽고 앉았던 빨간 머리 계집애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든다
어-눈온다
한강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서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지하철이 가끔 지상으로 올라가는 작은 변화
흐리던 하늘이 눈을 내려주는 변화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거죠
늘 반복되는 일상에 행복한 작은 변화들
아름다운 음악이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듯
아름다운 음악처럼 반복과 변화가 맞물리는 삶이 되길..
'일상에서 만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 바닥 (0) | 2020.06.26 |
---|---|
저토록 가벼운 것은 (0) | 2020.05.26 |
나이 오십에 즈음하여 (0) | 2020.04.24 |
늙어 가는 길 (0) | 2020.04.23 |
봄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온다 (0) | 2020.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