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창고

CEO 박정희

靑巖 2021. 8. 14. 01:01

2005.

저자 홍하상 

 

1955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저서 『오사카상인들 』 『교토천년상인 』 『일본의 상도 』 『도쿄 긴자상인 』 『이건희 』 『이병철 경영대전 』 『정주영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 『카리스마 대 카리스마 이병철 대 정주영 』 등과 『중국을 움직이는 10인의 CEO 』 『상신 리자청 』 등 

 

책소개

국민소득 82달러의 국가를 연소득 1만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철학을 풀어낸 책. 박정희는 싱가포르의 리콴유, 중국의 덩샤오핑,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가 그의 경제 모델을 따라하려고 노력할 정도로 아시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이 책은 저자가 최근 어려워진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1년 여의 시간을 들여 연구 분석한 결과이다.

 

“CEO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구성원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별히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았던 대통령 박정희의 순수한 카리스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내가 돌을 맞을 각오로 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작금의 이 어려운 경제 현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침잠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 박정희를 꺼내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흥분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다고 확신한다. --- 저자의 말”

 

출판사 리뷰

 

CEO 박정희

여기 한 사람의 CEO가 있다.
그가 취임했을 무렵 회사의 재정 상태는 최악이었고, 직원들의 월급 또한 다른 회사에 비해 형편없이 적었다. 사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서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들을 앞에 두고 한숨만 내쉬고 있을 수 없었다. 회사의 신용마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자본을 끌어들여 공장을 짓고 생산량을 늘렸다. 결국 그가 CEO를 그만둘 무렵 회사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직원들의 월급은 12배, 매출은 166배가 늘었다. 그가 취임할 당시 업계 순위 72위였던 회사가 퇴임할 무렵에는 17위로 올라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오랜 패배감에서 벗어나 ‘하면 된다’는 자심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 CEO의 이름은 박정희였고, 그가 이끌었던 기업의 이름은〈주식회사대한민국〉이었다.

왜 박정희인가

박정희가 뜨고 있다.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그의 이름은 우리의 현실이 암울할 때면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몇 년 전 IMF며 IBRD라는 국제기구의 이름이 자주 들먹거려질 때, 그리고 그 기구들로부터 엄청난 달러를 빌리는 대신 포악하기 그지없는 구조조정에 의해 일자리를 잃고 끼니를 걱정해야 했을 때, 박정희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행히 비었던 외환보유고도 차고 다시 먹고 살 만해졌지만 근래에 우리 경제가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자 여지없이 박정희의 이름은 또다시 쏠쏠하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역시 박정희만한 인물도 없어’라는 말들과 함께.
지난 연말 각종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 인물 1위로 그를 선택했고, 건국 이후 국부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으로 그를 꼽았으며 역대 정권 중 우리나라를 가장 발전시켰다고 느끼는 정권 또한 박정희 정권이라고 대답했다.
적어도 국민들은 그의 강력한 리더십이 이루어낸 경제 성장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간 리더로서 당시에는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며 그로 인해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초를 마련

이 책은 대통령 박정희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 국가 성장에 주력했던 경제 CEO의 면을 돌아본 것이다. 최근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돼 그 시절 정권의 잘못들이 속속들이 공개되고 있지만, 그가 열정을 가지고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포항제철이, 지금의 경부고속도로가, 오늘날의 경제 성장이 과연 있을 수 있었을까?
그는 큰 그림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길을 선택했다. 문제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경제 규모를 키워야 했다. 오늘날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커다란 산업들은 대부분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길고 긴 일제의 침탈에 연이은 한국전쟁으로 국가 경제가 필리핀이나 태국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을 때, 박정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제철소를 세웠고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을 지어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다리와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사람들을 총동원했으며, 고속도로 주변마다 숱한 장치산업을 들여왔다. 이 모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두운 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잘한 부분은 평가해줄 수 있는 한층 성숙한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이 책은 그의 과오와 공적을 제대로 평가하는 또 하나의 책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책 서문 일부 

 

박정희는 누구인가

무려 2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땅을 통치했던 독재자가 아니던가? 떠올리기도 싫은 우리 역사의 암흑기, 그 시절을 겪은 사람치고 그의 이름을 살갑게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군인이었다. 그것도 일제의 사관학교를 졸업한 일본군 출신이다. 그런 그가 쿠테타로 집권하더니 이후 20여년을 무력 통치했다. 한국 사람은 워낙 오랜 기간 그를 대통령으로 보아와서 그를 '대통령 박정희'로 기억하지만 주변 국가 사람들은 '제너럴 박'이라 부른다. 민주국가 국민들이 그를 정상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해주기는 처음부터 그른 일이다.그는 어디까지나 '박장군'이며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박정희는 그의 부하, 한 낭만적인 군인의 총탄에 의해 쓰러질때까지 무력으로 우리나라 역사의 시계를 20년간 멈춰 세웠다. 그 긴 세월 동안 국민들이 받아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가 없다. 벌써 마무리됬어야 할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우리는 친일파 제거에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또한 그는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었으며, 이에 반대하는 숱한 정치인과 학자와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탄광이며 공장이며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신음해야 했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접을 요구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몽둥이와 최루탄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 시절 얼마나 많은 열사들이 생겼던가, 끔찍한 세월이었다.

그가 만든 선례는 그가 죽은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이어져 이후 두 번이나 더 무력을 앞세운 군인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분명히 무언가 다른 독재자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들은 축재에 열을 올리지만 그는 부하에 사살되었을 때,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하나 있었다. 너덜너덜 다 떨어져서 원래의 색을 짐작 할 수 없을 지경의 가죽벨트... 도저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매고 있을 만한 것이못 되었다.

독재자가 죽으면 뒷말이 무성한 법이다. 없는 말도 만들어 진다. 그런데 박정희의 경우 부하들이 챙기는 것은 눈감아주었어도 그 자신이 뭔가를 챙겼다는 소리는 들린 적이 없다. 그는 적어도 자신을 위해 독재한 것은 아니었다. 잘살아보자고 외치며 발버둥치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것이다  (하략)

<홍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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