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책상 서랍의 분만

靑巖 2019. 8. 31. 13:48

책상 서랍의 분만



한두현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래로 쏟아져 내린 가여운 분만


올망 졸망 수 많은 새끼

뱃속에서 열 살이 넘도록 기다려 온 녀석까지


내 새끼 아니라면

눈 딱 감고 쓰레기차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찌어찌 그럴 수야

미안 미안한데 어미 뱃속에 오래 머물게 한 것도


기억을 추억을 더듬더듬

이 녀석은 언제 어떤 기분으로 만들었지

또 저 녀석은


하나하나 요리조리 챙겨챙겨

이 녀석은 어디에 쓸까 저 녀석은 어디로 보낼까


한나절도 후딱

조그마한 자궁이 잉태한 인연의 업


미리미리 해야 해

덤프트럭이 어느날 갑자기

저 자궁들 통째로 싣기 전에


머리가 스물스물 중얼중얼

일흔 넘은 나 분만하는 날엔

허공을 채우리 채우리라.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가 좋습니다  (0) 2019.09.01
나그네  (0) 2019.08.31
봄의 아랫목  (0) 2019.08.29
국화 옆에서  (0) 2019.08.22
별이 뜨는 강마을에  (0) 2019.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