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최은묵
키 큰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새가 고음으로 운다. 고음은 공간을 먼저 점령한다. 공간 어딘가에 커다란 입이 있어 소리를 먹어치운다. 공중이 땅과 달리 소란스럽지 않은 이유다.
때로는 땅에서 자라는 고음이 있다. 낯선 높이에 적응하지 못한 소리는 길길이 날뛰는데, 마치 맹수가 발톱을 휘젓듯 허공을 찢는 느낌이다. 역전시장 생선가게에서 들린 여자의 큰소리도 바닥을 모르고 살아온 고음이었다.
"할머니, 거스름돈을 이렇게 늦게 줘서 어떻게 장사하려고 그래요?"
고무장갑을 벗고 앞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쓴 후에야 천 원짜리를 새는 할머니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소란이 일자 옆집 상인은 딱하다는 듯 할머니를 흘깃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거들지는 못하고 뒤에서 젊은 여자를 욕했다. 주변에 있던 누구라도 할머니의 얼굴에 드리운 무아의 표정을 읽은 사람이 있었을까. 약간 굽은 등을 축으로 할머니의 머리가 까닥거린다. 아래위로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살짝살짝 틈이 드러난다.
여백이다.
오른발과 왼발의 보폭이거나, 밤과 아침 사이의 잠처럼 바닥을 딛고 사는 동안 몸으로 지워버린 공간이다. 얼마 전 낡은 침대를 버리고 새 침대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하룻밤을 방바닥에 누웠을 때와 흡사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각기 일정한 높이를 만들며 산다. 삶이란 동선을 덧칠하는 일이어서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 만든 길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탈출은 비워야 가능하다. 몸부림 끝에 힘을 소진한 후에야 평원처럼 펼쳐진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어색하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요다. 무엇이든 다 흡수할 것만 같은 깊이다. 할머니의 눈이 그러했다.
"미안하우 색시. 늙으니 자꾸 느려져서…."
거스름돈을 받아 든 여자가 낙서 같은 거리로 사라졌다. 쫓기듯 움직이는 사람들이 더께가 앉은 거리를 밟고 지나간다. 읽을 수 없는 활자들이 소란하다. 저곳에도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 바닥을 차고 오르려는 무리들을 대변하듯 도심의 건물은 점점 높아졌다. 평등한 공간이었던 공중이 누군가의 차지가 돼버렸다. 높이가 새로운 차이가 됐다. 겹은 두꺼워지고 다시 오르막이다.
여자가 떠난 거리를 바라보다 다시 시장으로 눈길을 준다. 역전시장이 야생화 만발한 들판 같다. 넉넉한 수런거림은 침대 없이 잠을 자던 날 방바닥에서 들었던 아늑한 소리다.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까만 우주다. 어쩌면 여백은 태초의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백이 높이가 없는 저음의 세계라면 하얗거나 투명하다는 생각은 상투다. 여백은 스스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도롱이벌레가 어둠을 갉아먹듯 벽이 뚫려 구멍 난 자리가 허공이다. 허공이 허공으로만 존재할 때 바람은 입을 벌리고 비로소 소리를 낸다. 개울물에 발을 담근 노을이 자갈과 속삭이는 소리나, 나이 먹은 딸을 부르는 늙은 어미의 손짓을 그대로 옮겨놓아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잡음 없이 맑은 소리다. 상상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 여백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면 역전시장이 그 입구가 아닐까.
굽 낮은 신발에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익숙하게 생선가게 할머니를 부른다. 엄마처럼, 딸처럼 눈으로 마음을 건네고 있다. 주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가 고등어 두 마리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토막을 내고 봉지에 담아 고등어를 건네는 할머니가 웃고 있다. 조금 전 인형처럼 표정에 변화가 없던 할머니가 아니다. 장갑을 벗고 앞주머니에서 안경을 쓴 후에야 거스름돈을 세는 할머니를 아주머니가 느긋하게 바라본다.
"어머니, 천천히 하세요."
"그리 부르지 말래두. 장갑을 벗어야 거스름돈에서 생선 비린내가 묻지 않는데 재촉하는 손님들이 있어."
사람들마다 자신이 가꾸는 공간이 있다. 손님들에게 비린내를 묻히지 않으려는 할머니의 마음이 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할머니의 여백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방금 고등어를 구입한 아주머니는 젊은 여자가 갔던 동네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주머니의 공간이다. 살아가는 동안 걸음을 딛는 세계가 소박할수록 틀림없이 여백은 크다. 채우지 않고 비워둘 줄 아는 사람에게선 고유한 냄새가 난다.
생선가게 할머니의 손에서 나는 비린내에 코를 찡그리는 사람과 된장국 끓여주는 엄마의 냄새인양 웃는 사람은 여백의 크기가 다르다. 내일도 생선가게에는 각기 다른 높이의 소리가 들고 날 것이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으로 나눠준 덤이 시장 밖에서 부풀어 커다란 공간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나도 모르게 할머니 앞으로 갔다. 딱히 생선을 구입할 건 아니었다.
"요즘은 남자들도 자주 사가곤 해요. 저녁 반찬으로 드시게?"
할머니는 오늘 물 좋은 생선이 이거, 이거, 생선이름을 잘 모르는 내게 손가락으로 일어준다. 고등어 제일 큰 걸로 한 손을 주문했다. 배를 갈라 내장을 떼어내고 지느러미를 자르는 칼이 무겁지도 않은지, 탁탁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맑고 투명하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얼마나 많은 덧칠로 두꺼워졌을까. 칼과 도마가 제 모습을 많이 비웠듯이 할머니의 손을 따라가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았다.
고등어와 거스름돈을 건네며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은 마치 사는 동안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 말고 비우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현재 나의 여백은 흐릿한 공간이다. 어릴 적 엄마 무릎을 베고 잠들었을 때의 편안함 같은 세계라고 상상을 한다. 다행히 나의 상상은 아직 아프지 않다. 나도 언젠가는 내 곁에 있는 여백을 발견할 날이 올 것이다. 여백은 결코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보폭이 조금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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