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그림자
김검호
고향에 두고 온 내 유년의 뜨락에는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누워있다
명절에 어쩌다 고향을 찾을 때면
참새 가슴처럼 오그라드는 심장을 움켜지고
정나미 떨어진 신작로에 서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애비 없는 호래자식, 늙은 애미랑 행랑채 살이 하는 놈...
누군가 던진 자갈에 뒤통수가 터져서
땟국물 얼룩진 손등으로 생기 잃은 피를 훔치면서
죽을 죄나 지은 놈 처럼 수그리고 걷던 그 길을
선뜻 들어서고 싶지않은 것이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
역전에서 어머니가 보자기에 싸준 삶은 달걀 두 알을
달구똥 같은 눈물을 떨구면서 꾸역꾸역 목구녕으로 밀어 넣던 그날
다시는 고향집을 찾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객지 하늘 아래서 걸뱅이가 되어 얼어 죽을지언정
그 신작로 길을 결코 다시 들어서지 않으리라!
白髮이면 首丘之心이던가?
나이테 두르며 철든 초로의 눈망울에는
앵두나무, 밤나무, 남새밭이며
삶은 고구마 말라붙어있던 소쿠리며
무시로 떠우르는 유년들의 잔상들을 쫓아
설움 얼룩진 그 신작로 길을 냅다 달려간다
외갓집이 보이는 샛길을 돌아서
어머니가 뒷짐을 지고 하염없이 서 잇던 그 돌담길에 이르면
달빛처럼 환한 미소로 주름진 이마를 맞대고
내 새끼 왔는가! 하시며 좋아하시던 그 목소리에
까닭 모를 눈물 흘리다가
허멀건 새벽 달빛에 눈을 뜬다
등 돌리고 살았어도
고향은 고향이다
출처: 시사문단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