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손근호
1
멍게는 뿌리로 통해 자라는 풀이 아니라
뜨거운 빛에 광합성하며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삼 년 동안 바위틈을 움켜잡아서 버티며 호흡하는 동물이다
다리가 달린 그것도, 빛살보다 얇은 수염뿌리 같은 마음으로
움켜쥐고 서 있는 삶
멍게를 다시 바라보면
뿌리로 그 틈새 사이에 자라난 것이 아니라
모래바닥에 떨어지면 세월의 조류에 나부껴
비빌 언덕도 없이 외로워질까 두려워
삼년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멍게는 삼 년 동안 한 자리에서 돌에 매달려 있다가
움켜잡은 수염뿌리가 힘이 없어 모래사구에 떨어졌을 때
바다 속 파도, 그 조류에 낙엽처럼 굴러다닌다
멍게의 삶이 -꺼-끄졌다
2
아침은 늘 새 아침이다
새벽녘을 반가움의 들뜬 해녀가
영감 두 다리로 거느적 거느적 뒷간 가는 안심 잡아두고
뛰어가야지 하며 바다를 일으킨다
훅, 하고 바다 속
매달려 있는 멍게들 중에 모래사장에 뒹구는 한 마리 멍게를 줍는다
오후가 되면 숨비소리** 쉬던 해녀가 따온
삼 년 묵은지 같은 멍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위에 앉아 멍게 한 접시
시인 되듯 읊는다
못난 사람 말하길 멍게 닮았다
멍게 비빔밥처럼 맛나다
잃었던 입맛 돌아온다라고들
3
멍게의 삼 년 삶이 외롭던 향이라서 진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멍게 한 접시에
바다 보며 소주 한잔을 걸치게 되는 이유도
살짝 그 삼 년의 외로운 향이
코끝에 발라져 희석하기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나마 남아 있기에 즐기는 찰나이다
아무도 멍게가 삼 년을 수염뿌리로
외로운 바위를 옮겨 쥐었다가 낙엽처럼 떨어져,
깊고 깊은 심해에 떨어져
모래 바닥, 혹은 사구에 떨어져 사라진다는 것을 모른다
멍게처럼. 해녀처럼. 우리처럼.
*멍게 : 우렁쉥이라고도 한다. 얕은 바다에 암석, 해초, 조개 등에 붙어서 산다. 생명은 약 3-4년
**숨비소리 : 해녀가 잠수 후 수면으로 나올 때 숨을 길게 내쉬는 행동과 휘파람 소리 같은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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