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멍게

靑巖 2019. 8. 10. 10:32

멍게

 

손근호

 

 

 

1

 

멍게는 뿌리로 통해 자라는 풀이 아니라

 

뜨거운 빛에 광합성하며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삼 년 동안 바위틈을 움켜잡아서 버티며 호흡하는 동물이다

 

 

다리가 달린 그것도, 빛살보다 얇은 수염뿌리 같은 마음으로

 

움켜쥐고 서 있는 삶

 

 

멍게를 다시 바라보면

 

뿌리로 그 틈새 사이에 자라난 것이 아니라

 

모래바닥에 떨어지면 세월의 조류에 나부껴

 

 

비빌 언덕도 없이 외로워질까 두려워

 

삼년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멍게는 삼 년 동안 한 자리에서 돌에 매달려 있다가

 

움켜잡은 수염뿌리가 힘이 없어 모래사구에 떨어졌을 때

 

바다 속 파도, 그 조류에 낙엽처럼 굴러다닌다

 

멍게의 삶이 -꺼-끄졌다

 

 

 

2

 

아침은 늘 새 아침이다

 

새벽녘을 반가움의 들뜬 해녀가

 

영감 두 다리로 거느적 거느적 뒷간 가는 안심 잡아두고

 

뛰어가야지 하며 바다를 일으킨다

 

훅, 하고 바다 속

 

매달려 있는 멍게들 중에 모래사장에 뒹구는 한 마리 멍게를 줍는다

 

 

오후가 되면 숨비소리** 쉬던 해녀가 따온

 

삼 년 묵은지 같은 멍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위에 앉아 멍게 한 접시

 

시인 되듯 읊는다

 

 

못난 사람 말하길 멍게 닮았다

 

멍게 비빔밥처럼 맛나다

 

잃었던 입맛 돌아온다라고들

 

 

 

3

 

멍게의 삼 년 삶이 외롭던 향이라서 진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멍게 한 접시에

 

바다 보며 소주 한잔을 걸치게 되는 이유도

 

살짝 그 삼 년의 외로운 향이

 

코끝에 발라져 희석하기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나마 남아 있기에 즐기는 찰나이다

 

아무도 멍게가 삼 년을 수염뿌리로

 

외로운 바위를 옮겨 쥐었다가 낙엽처럼 떨어져,

 

깊고 깊은 심해에 떨어져

 

모래 바닥, 혹은 사구에 떨어져 사라진다는 것을 모른다

 

멍게처럼. 해녀처럼. 우리처럼.

 

 

 

*멍게 : 우렁쉥이라고도 한다. 얕은 바다에 암석, 해초, 조개 등에 붙어서 산다. 생명은 약 3-4년

 

**숨비소리 : 해녀가 잠수 후 수면으로 나올 때 숨을 길게 내쉬는 행동과 휘파람 소리 같은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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