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명시 감상>
창밖에 내가 서 있다
김후란
새벽녘 방안에 누워 있을 때 또 하나의 내가 창밖에 서 있다.
밖에 선 나는 빛으로 짠 현란한 옷을 입고 오늘 더 없이 아름답다
누워 있는 나와 서 있는 나의 이 괴이한 만남은 오늘이 처음이던가
처음이면서 처음이 아닌 듯한 이 모양은 둘이면서 둘이 아닌 나의
실체인가,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닌 나의 갈등인가
빛을 거느린 창밖의 나는 무력한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다.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며 생각에 잠긴다.
우리에겐 무언가 할 말이 있어야 한다. 호되게 나를 때리는 말이 있어야 한다.
하나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뭇잎이 바람에 물결치는 동안
창밖의 나는 돌아서고 있었다. 말없이 내게 등을 보이고 떠나가는
나를 보면서 불현듯 가슴이 뛴다. 오늘 아침 나는 껍질이 가고 있는가,
껍질만 남아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