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문단

나비표본 상자

靑巖 2019. 11. 23. 16:46

<한국 명시 감상>

 

 

나비표본 상자

 

 

마경덕

 

 

화려한 옷들이 진열장에 걸려 있다. 나비는 바느질의 달인. 생전에

가봉을 하던 버릇대로 가슴에 시침핀을 꽂고 있다. 덧댄 자국 없는

천의무봉의 솜씨들, 그동안 주름잡은 허공은 몇 필인지?

 

꽃밭은 원단 도매상, 치수에 밝은 나비는 둘둘 말린 대롱줄자를 꺼내

길이를 잰다. 갖가지 원단은 꽃에서 나온다. 호랑나비 가문은 얼룩

무늬, 배추밭이 친정인 노랑나비는 배추고갱이처럼 노랗다. 대대로

한 무늬만 고집한 나비의 계보에 유행은 없다.

 

옷 한벌을 짓기 위해 평생을 바친 장인들, 날개옷 한 벌을 완성하고

유리무덤에 갇혔다. 입으면 벗을 수 없는, 아름다운 그 옷이 화근이다.

 

나비는 죽어도 날개를 접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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