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명시 감상>
나비표본 상자
마경덕
화려한 옷들이 진열장에 걸려 있다. 나비는 바느질의 달인. 생전에
가봉을 하던 버릇대로 가슴에 시침핀을 꽂고 있다. 덧댄 자국 없는
천의무봉의 솜씨들, 그동안 주름잡은 허공은 몇 필인지?
꽃밭은 원단 도매상, 치수에 밝은 나비는 둘둘 말린 대롱줄자를 꺼내
길이를 잰다. 갖가지 원단은 꽃에서 나온다. 호랑나비 가문은 얼룩
무늬, 배추밭이 친정인 노랑나비는 배추고갱이처럼 노랗다. 대대로
한 무늬만 고집한 나비의 계보에 유행은 없다.
옷 한벌을 짓기 위해 평생을 바친 장인들, 날개옷 한 벌을 완성하고
유리무덤에 갇혔다. 입으면 벗을 수 없는, 아름다운 그 옷이 화근이다.
나비는 죽어도 날개를 접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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