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어 5220개 뜻풀이 ‘사전’ 나온다
고려대 현대시연구회 10년 작업
‘않다, 없다, 아니다, 안, 없이, 아니, 말다, 못하다, 아냐, 안하다….’
영원한 청년 시인 김수영(1921~1968·사진)의 시어에는 이처럼 부정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는 176편의 시를 남겼는데 ‘않다’라는 단어가 98편에서 250번이나 나온다.
또 ‘없다’는 172번(77편), ‘아니다’는 88번(56편) 등장한다. 그가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뒤집으면서 더욱 높은 가치에 도달하려 한 ‘부정의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느낌이 아니라 통계로 입증되는 셈이다.
고려대 현대시연구회(회장 최동호·국문과 교수)는 10년간의 작업 끝에 원고지 1만쪽 분량의 <김수영 사전>(서정시학)을 발간한다.
이 사전은 <김수영 전집1: 시>(민음사·2003)에 실린 176편의 시를 대상으로 시어의 뜻풀이와 용례를 수록했다. 또 전체 시에서 5220개의 표제어를 추출한 뒤 이를 체언 계열과 용언 계열로 나누고 계량화해 김수영 시어의 특성을 분석했다. 김수영이 생전에 유일하게 발간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춘조사·1959)과 사후에 발간된 여러 선집과 전집, 본인과 가족이 남긴 육필 원고 등을 대상으로 표기, 행, 연, 띄어쓰기 등의 차이를 제시한 것도 특징이다.
김수영의 시어를 분석한 결과 체언 계열에서는 ‘시’(49번/24편), ‘적’(43/7), ‘자유’(31/11) 등의 한자어와 ‘얼굴’(55/28), ‘눈’(50/39), ‘몸’(42/26) 등의 신체어가 많이 사용됐다. 김수영이 ‘적’과 대면해 ‘자유’를 추구하였고, 이를 ‘시’에서 구현하고자 했다는 뜻이다. 또 얼굴이나 눈에 대한 관심은 사물을 바로 보려고 했던 주지적 태도를 반영한다.
용언 계열의 시어에서는 부정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 외에 ‘보다’(123번/72편), ‘보이다’(34/22), ‘듣다’(26/20) 등 감각계열의 인지어와 ‘모르다’(70/43), ‘생각하다’(69/41), ‘알다’(55/34) 등 사유계열의 인지어가 사용됐다.
감정어로는 ‘사랑’(48번/16편), ‘좋다’(41/32), ‘울다’(31/21), ‘웃다’(30/17), ‘설움’(29/15), ‘무섭다’(25/21) 등이 등장했다. 현실을 비판하고 이웃과 친구, 심지어 아내를 욕하는 그의 시에는 높은 이상을 향한 끊임없는 부정과 함께,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언 계열이 김수영의 시적 관심과 폭을 보여준다면, 용언 계열은 시적 인식 방법의 특수성을 증명한다. 전반적으로 김수영 시어의 특징은 고유명사나 외래어에 비해 한자어를 대단히 많이 사용하는 데다 부정어 어휘의 반복적 사용을 통해 사유를 전개하고 다양한 층위의 감정어를 집중 사용함으로써 특유의 시적 태도를 형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시연구회 측은 “질곡의 시기에 당대 현실과 예술의 문제 모두에 집중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김수영 시의 힘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찾기 위해 시어 하나하나를 풀이하는 사전 작업을 했다”며 “기존의 분석을 실제적으로 증명하는 결과가 산출되기도 했지만 새로운 해석의 여지도 발견돼 연구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출처:경향신문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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