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산다는 것에 대하여

靑巖 2020. 4. 1. 00:32


산다는 것에 대하여


박선애



순자의 나이 스물여섯

순자는 부모를 모른다

어렴풋이 아는 건

아편쟁이 아버지와

집 나간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

순자는 부모를 모른다

 

다섯 살의 순자

춥고 배고픈 시절을 지나

세월만큼 훌쩍 자란 순자

눈독을 들인 고아원 원장

밤마다 불려나간 순자

 

팔려온 미아리 588

사내의 정액이 마르기도 전

기억도 안 난 수많은 사내들이

순자를 거쳐가고

순자는 스스로 죽어가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절망이다

순자는

고아원에서 읽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기억한다

순자는 유리구두를 신겨줄 누군가를 기다려본다

 

시집 <찬란한 목련의 슬픔>

―「산다는 것에 대하여·3」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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