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에 대하여
박선애
순자의 나이 스물여섯
순자는 부모를 모른다
어렴풋이 아는 건
아편쟁이 아버지와
집 나간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
순자는 부모를 모른다
다섯 살의 순자
춥고 배고픈 시절을 지나
세월만큼 훌쩍 자란 순자
눈독을 들인 고아원 원장
밤마다 불려나간 순자
팔려온 미아리 588
사내의 정액이 마르기도 전
기억도 안 난 수많은 사내들이
순자를 거쳐가고
순자는 스스로 죽어가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절망이다
순자는
고아원에서 읽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기억한다
순자는 유리구두를 신겨줄 누군가를 기다려본다
시집 <찬란한 목련의 슬픔>
―「산다는 것에 대하여·3」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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