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목련나무 아래로 가다

靑巖 2020. 4. 3. 00:17

 


목련나무 아래로 가다 


 최을원

 

 

그곳에 목련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노래의 잔뼈들만 떨어져 쌓이고

우연처럼 바람이 불면

녹슨 목련꽃잎보다 더 빨리 지고 싶었네

노을 속으로 도시가 서둘러 가면

지친 노래가 터덜터덜 고샅길 내려갔었네

그런 날 밤마다, 하숙집 낮은 창을

밤새 두드리던 그 목련나무,

대책없는 젊음이 파지로 싸이고 나서야 잠들던 새벽녘

꿈은 폐비닐처럼 찢겨 담벼락에 꽂힌

병 조각 끝에서 펄럭거렸네

지금도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화라락, 화라락, 꽃잎 지는 소리 들리네

떨어진 자리마다 붉은 녹물이 배이네

몇 개의 낯익은 거리들이 순례자처럼 찾아오면

오래된 노래가 주섬주섬 대문을, 또 나서네



사진:네이버blog 풍요로운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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