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문단

시인별곡

靑巖 2020. 5. 16. 00:32
시인 별곡


조 현 동


시인이 되기 전에는 시인들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시인이 되기 전에는 시인들은 저절로 시가 만들어 지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시인들이여! 우리의 시가 오로지 시일 수 있도록 시의 가슴에 돌을 던져라!
시인들이여! 우리의 시가 오롯이 시가 될 수 있도록 시의 가슴에 불을 지펴라!

그런 다음에는 가장 편안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시가 오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려라!
그러다가 그대의 손끝으로 시가 다가와서 입질을 하는 바로 그 순간!

절대로 절대로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잽싸게 그놈을 나꿔 채라!
씨알이 굵은 놈, 가는 놈, 큰 놈, 작은 놈 가리지 말고 무조건 낚아 올려서
시인의 시집 물탱크 속에다가 막 쓸어 담아라!

시인들이여! 제발! 간곡하게 부탁하고 또 부탁하노니
제발! 제발! 좋은 시만, 훌륭한 시만 쓰겠다고 하는 헛된 욕심은 아예 버려라!

시인들이여! 오로지 시가 그냥 시일 수 있는 그런 시들만 무차별적으로 쓰라!
아직도 좋은 시, 훌륭한 시만을 쓰겠다고 하는 헛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대는 감히 시를 쓰기가 너무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그 욕심을 내려놓을 때까지는 단 한 줄의 글조차도 자유롭게 쓸 수가 없을 것이다!

하여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시인들이여!
시인은 결코 좋은 시, 훌륭한 시만을 쓰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시를 쓸 수 있는 글쟁이로서 인증을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시를 많이 많이 쓰고 또 쓰다가 보면
그중에서 한두 편 정도가 좋은 시, 훌륭한 시로서 널리 인구에 회자될까 말까할 따름이다

누구나 시인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시인들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인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누구나 시인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시인들은 저절로 좋은 시, 훌륭한 시를 쓰는 것인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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