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문단

어머니의 그늘

靑巖 2020. 5. 16. 03:35

어머니의 그늘

 

장세춘

 

 

나이 육십이 다 되어도

팔십 노모 그늘에 산다

그늘 속에서 오늘은 김치를 먹었다

김장김치 깻잎 절인 거 고추 절인 거

고구마 꾸러미까지

이번에도 삭아 터진 몸으로

바위를 굴리셨다

 

자식 살림 다 돕고

내 한 몸은 건수 할 수 있다

내 걱정 말고 너나 잘살아라

아버지 산소 곁에서

꼼지락 옴지락

혼자 사시는 어머니

 

꽃다운 처녀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자식을 낳고

이름을 다시 짓듯

가슴에 나무를 심으신 어머니

 

쇠가죽보다 질긴 뿌리

뼛속에 스미어

양분 다 빨리며

껍질이 쩍쩍 갈라지도록

 

가슴에 아름드리 키우신 어머니

눈가에 드리운 짙은 그늘

그 깊은 그늘 속에

나는 늘 살았다

 

몸은 자꾸 작아져도

나무는 커지고

더 짙어지는 그늘

 

나중에

좀 더 나중에

어느 날엔가

나무가 쓰러지면

그늘이 거두어지면

어떻게 하나

나는 어쩌나

 

푸른 나무로

그늘이 되시다가

더 큰 그늘로 가시고

나는 또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그렇게 사람은

본연의 그늘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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