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속의 詩

세신사

靑巖 2019. 8. 4. 15:50

<2019 매일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세신사

   

이현정

  

 

 

조각가가 꿈이었던 팔목 굵은 사내는

 

대리석 목욕대 위 모델을 흘깃 보고

 

한 됫박 첫물 뿌리며 데생을 시작한다

 

 

한때는 눈부셨던 세차장 사장도

 

지금도 눈부신 성형외과 의사도

 

실상은 꼼짝 못하고 몸을 맡긴 피사체

 

 

깔깔한 때수건 조각도처럼 밀착시켜

 

핏줄까지 힘주어 묵은 외피 벗겨내면

 

곧이어 환해진 토르소, 두 어깨 그득하다

 

 

수증기 송송 맺힌 목욕탕 한 편에서

 

날마다 극사실주의 석고 깎는 조각가

 

두 손은 북두갈고리 거친 숨을 뱉는다


'시집속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솔 아래서  (0) 2019.08.06
마당 깊은 집  (0) 2019.08.04
거미  (0) 2019.08.04
편지  (0) 2019.07.27
신발론  (0) 2019.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