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이후 단종 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처형되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장릉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사적 제196호.
조선의 제6대 국왕. 묘호는 단종(端宗), 시호는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3]이며 휘는 홍위(弘暐)이다.
세종의 장손이자 문종과 현덕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나 왕세손으로 책봉되었다. 세종이 사망한 뒤 문종이 보위에 오르면서 왕세자로 개봉(改封)되었고, 문종이 2년만에 사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할아버지 세종과 할머니 소헌왕후도 단종이 어렸을 때 사망했고 마지막 남은 직계존속인 아버지 문종마저 사망하면서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혈혈단신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올라 김종서와 황보인 등이 섭정하게 되었다.
결국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대권을 잡고 반강제로 상왕이 되었으며, 상왕으로 재위할 때 일어난 단종복위운동의 여파로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느낀 세조에 의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 당하여 끝내 그곳에서 살해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복 형들이 두 명이 있었으나, 모두 어릴 때 죽었기 때문에 사실상 외아들로 성장하였다 전한다. 즉위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를 전부 잃고, 12살에 홀로 임금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어난 다음날 어머니 현덕왕후가 산후 후유증으로 죽었고, 6살 때는 할머니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며, 10살 때는 할아버지 세종도 병으로 승하하고, 12살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 문종마저 지병이던 등창의 재발과 악화로 승하[4]하면서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집권한 뒤 1년 후 숙부인 수양대군의 반란으로 실권을 빼앗기고 결국 15살이 되던 해에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17살이 되던 해에는 결국 수양대군에 의해 목숨을 잃게된다.
엄흥도 나무
단종 어소 담장 밖에 특이한 소나무가 하나 있는데
담장 밖에서 단종 어소 안쪽을 향해 절을 하는 듯
굽어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관직을 버리면서까지 단종의
마지막을 지켜주었으며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장릉에 묻은 엄흥도의 충정을 기려
엄흥도 나무라 불린다고 한다.
영월의 '창절사'라는 사당에는 사육신과 함께
충의 엄흥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단종의 유배지로 청령포로 들어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청룡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은 절벽으로 막혀 있어 육지이지만
외딴섬이나 다름없다.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이곳에서
2개월 동안 귀양살이를 한 곳이다.
출처:나무위키,네이버지식백과,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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