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문단

겨울비

靑巖 2020. 4. 18. 03:33

겨울비


양재각



차디찬 얼굴을 내밀며

따스한 추억을 품고

거리에 잠들었다


무심한 높은 빌딩들의 묵언수행과

바닥을 스치는 불규칙한 걸음들이 내 몸을

툭툭 건드리며 지날 때 나는 움짓 텅 빈 오장육부의 찌꺼기를 토할

듯 몸을 사린다

바닥을 두드리는 불규칙한 음계의 파장이 내 귀를

할퀼 때면 브란덴부르크의 현란한 연주곡이

크린센도의 외침으로 왔다가 사그라든다


비를 좋아했던 유년의 기억이 있었던가


투명한 겨울왕국의 설움이 삭풍에 노출된

알몸을 씻어 내릴 때

한없이 맑았던 내면의 사유는 작은 떨림에도

아파했을 순수였다

뭔지 모를 그리움이 설익은 채로 다가와

내 몸 구석구석을 적실 때는

몸살만큼 열병을 앓기도 했다


지금 이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납작 웅크려 구겨진 때 묻은 옷자

락 끝으로

겨울비가 춥고 가난한 목마름으로 나를 적시고 있다



2020 봄의 손짓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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