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양재각
차디찬 얼굴을 내밀며
따스한 추억을 품고
거리에 잠들었다
무심한 높은 빌딩들의 묵언수행과
바닥을 스치는 불규칙한 걸음들이 내 몸을
툭툭 건드리며 지날 때 나는 움짓 텅 빈 오장육부의 찌꺼기를 토할
듯 몸을 사린다
바닥을 두드리는 불규칙한 음계의 파장이 내 귀를
할퀼 때면 브란덴부르크의 현란한 연주곡이
크린센도의 외침으로 왔다가 사그라든다
비를 좋아했던 유년의 기억이 있었던가
투명한 겨울왕국의 설움이 삭풍에 노출된
알몸을 씻어 내릴 때
한없이 맑았던 내면의 사유는 작은 떨림에도
아파했을 순수였다
뭔지 모를 그리움이 설익은 채로 다가와
내 몸 구석구석을 적실 때는
몸살만큼 열병을 앓기도 했다
지금 이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납작 웅크려 구겨진 때 묻은 옷자
락 끝으로
겨울비가 춥고 가난한 목마름으로 나를 적시고 있다
2020 봄의 손짓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