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詩 속으로 116

물웅덩이의 시선으로

물웅덩이의 시선으로 / 이상준 길을 가다 마주한 물웅덩이그 안에 떠있는 풍경들 그 얕은 수면 위로 내려앉은하늘이 구름이 소박하고 예쁘다 문득 무심히 지나쳤던내 안에 고인 마음들 보여줄 수 없는 한계 때문에한없이 주눅이 든 모습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보는욕심이 없는 소박하고 겸손한물웅덩이의 시선이 부럽기만 하다.

속도의 늪

속도의 늪 / 이상준세상은 급발진 속도에 삶의 방향을 잃고무엇이 옳고 그른지이기와 인성의 부재로 끊어진 관계 속기본과 원칙이 없는 속도에만 집착하는 사람들과길들여진 도시는지난 시간의 마디마다파이고 상처였음을 잊고 있다초고속 인터넷이빠른 속도로 피싱을진화시키고마법을 부리듯빠르게 쌓는 건물이척추가 부실한 것도결국 우리가 만든 욕심의 늪이었음을...

바라, 봄

바라, 봄 / 이상준날씨가 풀리면서 도로변에 봄이 먼저 왔다파릇파릇한 각오와 도전을 외치는 봄의 전령사들봄꽃의 매력만큼이나치장을 한 표정들은벌써 반바지와민소매 차림이다개화시기에 맞춰 활짝 폈다 지듯으레 봄은 봄이리라데면데면하였는데겨우내 소통이 없이기한 지난 감정들로새봄을 기대할 수 있을까올봄은 흙도 바꾸고화분도 바꾸고제대로 분갈이를 해야희망을 기대하는 새봄이 되리라.

내친구 세윌아

내 친구 세월아 / 이상준오랜만의 만남이었다바쁘게 살았다고이제야솟구치는 그리움을 본다서로를 보니일진일퇴하며 살아온 날들이물결치듯 쏟아지고네 앞에낮아진 모습으로지나간 날들은 거름이 되었다그리움이 허기를 채우듯이오래된 안부를 묻고 흐려진 추억을 따라굽이굽이 돌아간다머리숱이 줄고주름의 흔적이 우리를 몰라줘도가슴은 뜨거운 젊음처럼 마주 앉아 우리는 웃었다내 친구 세월아조금 이른 은퇴에도걸음걸이가 늦어도이것도 나를 위한 삶인데 너무 서두르지 말자 아직은기다림이 좋지 않던가.

폭설이 내리던 날

폭설이 내리던 날 / 이상준헐벗은 가지마다 살포시 쌓인 투명한 의식이 깊숙이 가슴으로 번졌다 바람에 흔들리던 날도 울컥 쏟아지는 날에도 놓지 못한 움켜쥔 감정을 하얗게 지우는수행자의 축제 발가벗은 네 모습부끄러움을 씻어내고시들해진 가슴을 위로하는투명의 소리를 듣는다메마른 머리위로 서리꽃 물결새하얀 면사포를 쓰고숙연하게 고개숙인거룩한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