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미로 문학의 미로.1 박 형 서 신비한 바람의 기류에 떠밀려 무작정 걷다 도착한 숲 속길 인적조차 끊긴 문학 숲에서 돌아갈 둥지의 좁은 길을 까맣게 잃어버렸습니다 13월의 조용한 무인도 숲 속은 고독으로 가득하고 파도가 포말로 부서지는 소리에 밤이면 샛별이 떠올랐습니다 그 소리를 가슴.. 시집속의 詩 2020.04.21
시인의 눈물 시인의 눈물 박형서 삶은 온통 찬바람의 하얀 겨울이었다 촛불 닮은 사람을 간직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차가운 타인으로 남아 쇼우 윈도우 마네킹을 흉내 내면서 표정 잃은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내 안의 쓸쓸함과 허전함을 지우려고 가슴이 시린 만큼 다가서고 싶었어도 타인들.. 시집속의 詩 2020.04.21
낙타는 뛰지 않는다 낙타는 뛰지 않는다 권순진 날마다 먹고 먹히는 강한 자가 지배하지도 약한 자가 지배당하지도 않는 초원을 떠나 사막으로 갔다 잡아먹을 것 없으니 잡아먹힐 두려움이 없다 먹이를 쫓을 일도 부리나케 몸을 숨길 일도 없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제 .. 시집속의 詩 2020.04.20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 시집속의 詩 2020.04.14
눈이 오면 눈이 오면 / 김영승 눈이 오면 알리라 눈보다 더 흰 것은 어디에도 없음을 눈만큼 흰 것은 곧 사라져감을 하얀 종이 위에 하얀 물감으로 그대의 얼굴을 그릴 수 없듯이 밤하늘이 깜깜하면 깜깜할수록 별빛이 밝듯이 눈이 오면 알리라 내리는 그것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음.. 시집속의 詩 2020.04.14
몸 하나의 사랑 몸 하나의 사랑 / 김영승 몸 하나의 생김 몸 하나의 흔들림, 몸 하나의 쓰러짐 하늘로부터 굵게 꺾어진 꺾어져서 땅 위에 박힌 펄떡 펄떡 뛰는 이 부드러운 빛나는 몸 하나의 나뉘어짐, 몸 하나의 흐트러짐 그 치솟는 힘에 짓눌리어 찢어져 가는 몸 하나의 노래 아무 까닭 없이 꿈틀거리.. 시집속의 詩 2020.04.14
말을 위한 기도 말을 위한 기도 이해인 수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 시집속의 詩 2020.04.09
푸른 곰팡이 푸른 곰팡이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 시집속의 詩 2020.04.09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이준관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꽃밭이 내 집이었지. 내가 강아지처럼 가앙가앙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마당이 내 집이었지. 내가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 다녔을 때 푸른 들판이 내 집이었지. 내가 잠자리처럼 은빛 날개를 가졌을 .. 시집속의 詩 2020.04.09
유리상자 안의 신화 유리상자 안의 신화 박건호 나는 어렸을 때 하늘에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초등학교 시절에 알았다 그래서 비밀을 간직하기 시작했다 뒷편 서낭나무에서 잡아오던 귀신도 여름 밤 우물가에 날아다니던 도깨비 불도 보지 않았던 .. 시집속의 詩 2020.04.09